우리 만화산업은 어느 장르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통해 문화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저렴한 창작비용과 낮은 감상비용은 대중적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최근 만화산업은 내외적 요인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만화산업계는 현실을 진단하고 체질개선을 통해 위기 돌파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 가능성 중 하나가 다매체 시대 대응전략인 ‘만화 원작산업화’다.
요즘처럼 만화라는 문화콘텐츠가 타 장르 전문가들의 관심과 러브콜을 받던 때가 또 있었을까. 만화인으로서 어느 때보다 긍지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물론 일본과 미국 등 만화강국들에 비해 만화의 원작산업화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일부 성공사례가 등장하고 있지만 좀더 다양한 후발 프로젝트 추진능력이나 시스템 구축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만화의 해외수출이 급신장하는 등 원작콘텐츠로서 한국만화의 가치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만화산업의 체질개선 대안이 왜 ‘원작산업화’인가. 원작산업화는 타 장르의 원작콘텐츠로서 만화의 활용도를 높이고 그 수익구조가 만화산업 전체의 핵심 수익구조로 자리잡도록 하는 체질개선을 의미한다.
원작산업화의 프로세스는 적은 비용으로 만화를 창작하고 그 흥행작을 바탕으로 영화·드라마와 같은 고비용이 필요한 타 장르의 원작으로 활용하면서 라이선스와 저작권 비즈니스로 고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을 토대로 원작산업화가 아니면 안 되는 현재 만화산업의 위기요소를 몇 가지 들어보자.
우선, 흥행시스템이 붕괴했다. 90년대 후반 대여시장의 생성으로 만화 판매시장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우수 작가와 독자의 선택에 의해 길러진 베스트셀러 시스템이 붕괴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창작인력 양성의 어려움이다. 판매에서 대여시장으로 전환되면서 잡지 연재작의 경우 초판 2만부에서 1만부 판매도 되지 않는 악순환 속에서 만화작가들은 다른 분야로 전업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독자 구매패턴도 빌려보는 것으로 완전히 변하면서 시장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만화도 다매체 시대의 다양한 콘텐츠인 게임·영상 콘텐츠들과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들과 직접 맞서는 경쟁이 아니라, 만화를 게임으로 만들어 그 수익을 분배하고 만화를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해 수익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다매체 시대에 적응하는 만화산업의 공격적인 전략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만화산업은 콘텐츠 산업 전반에 성공사례를 안겨주면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전통적인 만화시장의 불황은 여전하지만 신인작가의 지속적인 발굴 노력은 우리 만화산업이 재도약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만화적 코드가 그대로 대중에게 전파돼 대중문화 전체를 특징 짓는 상업적 코드로 작용하면서 만화는 긍정적인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제 미래 만화산업의 방향을 이끌어갈 대안은 찾았다. 그렇다면 이 대안을 적극 활용할 전략적인 모색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우선, 국내 판매시장을 활성화해 양의 경쟁에서 질의 경쟁으로 전환하면서 베스트셀러의 탄생으로 만화황금기를 맞이해야 한다. 또 양질의 만화콘텐츠 원작산업화를 위해 만화의 특성을 이해하고 타 장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전 과정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할 전문가의 양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세계 만화시장에서 우리 만화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해외수출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원작산업화는 만화계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 장르와의 인적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유관 문화콘텐츠 산업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만화원작의 투자가치를 이해시키기 위한 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만화계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원작산업화의 전략이 말과 이론으로 끝나지 않도록 목표를 세워 추진할 수 있는 의무와 책임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황경태 학산문화사 대표 겸 한국만화출판협회장 hwang@haksanp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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