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는 명실상부한 국내 온라인 게임계의 지존이다.
1998년 9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해 수직 상승을 거듭하며 PC게임이 장악하고 있던 국내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꿔 버렸다. 그 해 12월에는 동시접속자수 천 명을 돌파했고 다음 해 10월에는 만 명을 넘어섰다.
2000년에는 회원수가 500만 명으로 뛰었고 동시접속자수도 10만 명에 이르는 새로운 역사를 썼했다. 또 2000년 7월에는 개발사 엔씨소프트가 코스닥 입성에 성공해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2001년에는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 엔씨소프트는 2004년 9월 기준으로 누적 매출이 6000억 원을 넘겼다.
뿐만 아니다. 국내를 평정한 엔씨소프트는 단 하나의 게임 ‘리니지’로 해외 진출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2000년 미국 법인 엔씨인터렉티브를 설립했고 다음 해에 세계 정상급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을 영입했다. 동시에 미국 지사 엔씨오스틴을 세웠으며 일본에는 소프트뱅크와 합작으로 엔씨재팬을 탄생시켰다.
이 후로 계속해서 블리자드 핵심 개발자들이 설립한 아레나넷 인수, 중국 업체 시나와 합작 법인 엔씨-시나 설립 등 해외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태국과 유럽으로도 손을 뻗쳤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리니지’의 성공에 기인한다.현재 ‘리니지’의 계정 수는 국내만 4000만 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중복되고 편법으로 등록된 계정을 제외해도 약 20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전 국민이 ‘리니지’에 한번은 접속해 회원가입을 했고 그 중 절반은 플레이를 해봤다는 말이다.
‘리니지’의 대성공은 국내에 MMORPG의 돌풍을 불러 일으켰고 PC게임을 개발하던 개발사들은 너도 나도 온라인 게임으로 방향을 돌렸다. ‘리니지’는 국내 온라인 게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온라인 게임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당시 개발자들은 게임 시스템과 그래픽, 컨셉트, 팬터지 세계관, 유저 성향, 서비스, 고객 지원 등 모든 것을 ‘리니지’에서 배웠다.
또 아이템 현금 거래를 촉발시켜 게임상의 아이템을 실제 돈을 주고 거래하는 새로운 사업을 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지만 현재 아이템 거래 시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아이템 현금 거래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며 ‘리니지’가 주축인 것은 사실이다. 2004년 기준으로 아이템 현금 거래량은 약 5000억원에 육박한다.이런 세기의 게임을 만든 사람은 과연 누굴까? ‘리니지’는 송재경 현 XL게임즈 사장의 작품이다. 송 사장은 순정만화의 광팬이었고 전작 ‘바람의 나라’도 만화가 원작이었다. 그래서 가장 팬터지 세계관에 가깝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지닌 ‘리니지’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송 사장이 엔씨소프트에서 처음부터 게임을 개발했던 것은 아니다. 알려진 것처럼 그는 넥슨의 창립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국내 최초의 그래픽 머드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으나 넥슨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보다 안정된 환경을 위해 아이네트로 자리를 옮겼다.
‘리니지’는 여기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고 원작 만화 작가 신일숙 씨와 게임화에 대한 계약을 맺은 곳도 아이네트였다. 당시 김택진 사장은 재직 중이던 현대를 퇴사하고 사업을 구상하던 시기였다. 잠시 서버 관련 업체를 운영했으나 ‘게임 개발자 송재경’을 만나면서 의기투합했다.
온라인 게임의 미래를 확신한 그는 1997년 3월 엔씨소프트를 설립하고 송 사장과 휘하 팀원들을 모두 영입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리니지’ 신화의 시작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엔씨소프트 초창기 시절 김 사장은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게임 업체를 방문했으나 대부분 퇴짜를 놓았다는 점이다. 아마 그 때 속는 셈치고 조금이라도 투자했다면 지금쯤 엄청난 갑부가 됐을 것이다. 현재 신일숙 작가는 엔씨소프트의 고문으로 등록돼 있다.‘리니지’는 1998년부터 시작해 장장 8년이나 서비스 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온라인 게임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리니지’는 2D로 개발돼 요즘의 3D 온라인 게임들과 상대도 안된다.
또 단순한 캐릭터와 조잡한 움직임 등은 최장수 최고 인기 게임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여전히 동시접속자수 13만 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어떠한 온라인 게임보다 많은 유저와 길드, 활성화된 커뮤니티를 거느리고 있다.
이 작품은 본격적인 MMORPG의 신호탄을 쏜 온라인 게임이다. 초기 컨셉트는 가상의 세계에서 유저가 자신의 분신(캐릭터)를 이용해 전투와 사냥을 즐기는 것이었다.
롤플레잉 게임의 기본 시스템은 유지했으나 액션을 최대한 부각시켜 지루함을 덜어줬다. 유저는 군주, 기사, 요정, 마법사, 다크엘프 등 5가지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각각 남녀의 구분을 줘 사실상 총 10가지의 캐릭터가 존재한다. 초창기 ‘리니지’는 캐릭터와 아이템의 밸런스가 맞지 않고 버그가 난무했지만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재 완벽한 균형을 가진 온라인 게임이 됐다.
유저들이 ‘리니지’에 중독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선점 효과가 컸다. 이 작품은 온라인 게임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던 시절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PC게임 ‘디아블로’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이 작품과 가장 유사했던 ‘리니지’가 그 인기를 이어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운도 좋았다. IMF를 겪으며 우후죽순처럼 PC방이 생겨난 것도 유저가 급상승한 요인이었다.
또 앞서 설명한 아이템 현금 거래의 활성화다. ‘리니지’는 레어 아이템 시스템을 도입해 아이템의 가치를 엄격하게 제약했다. 예를 들어, 한 서버에 최고의 아이템은 반드시 1개만 존재하도록 설정해 희소성의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유저들은 아이템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현금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게임 플레이로는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돈을 줘서라도 소유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당 아이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늘어날수록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돈이 아까울 이유도 없었다. 언제든이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템 거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여러가지 복합 요인들이 작용해 오늘날의 ‘리니지’가 완성된 것이다.
‘리니지’는 벌써 8년이나 장수한 게임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금과 같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리니지’도 결국 서버를 모두 닫아야 하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국내 게임 산업에 미친 지대한 영향은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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