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한복판에 있는 PC방에선 ‘리니지’와 ‘뮤’의 화면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PC방 이용자 대부분이 한국 교포 학생들이었고, 게임도 한국 게임인지라 흡사 한국의 지방 소도시 PC방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등 한국인이 몰려 사는 미국 대도시엔 예외없이 PC방이 성업중이고, 그곳은 한국산 온라인게임들로 점령된지 오래다.
미국에서 한국산 게임서비스 분야는 이렇게 한국인을 상대로한 ‘민족주의 시장’이 여전히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시대나 환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일반 미국인들에게 한국산 온라인게임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두에 엔씨소프트가 있다. 최근 막을 내린 E3 2005에서 엔씨소프트는 북미시장에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한국 게임업체로 대내외적 평가를 확고히 받아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01년 5월 ‘리니지’로 미국시장에서 상용서비스 첫 테이프를 끊은 뒤 ‘리니지2’ ‘시티오브히어로’ ‘길드워’까지 매년 1종씩 모두 4개의 온라인게임을 성공적으로 상용화시켰다. 미국에서의 온라인게임 성공가능성은 ‘시티오브히어로’부터 확인됐다.
‘시티오브히어로’는 지난해 4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불과 5개월만에 25만장의 패키지가 팔려나가는 대박을 일궈냈다. 이후 3개월마다 5만장씩을 추가하며, 지난 3월 현재 총 35만장이 팔려나갔다.<표참조>
미국은 한국과 달리 온라인게임도 다운로드 방식이 아니라 패키지를 구매한 뒤 온라인으로 접속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한국에서 동시접속자수 만큼 패키지 판매량이 성공여부를 결정 짓는다.
지난 2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폐막된 E3 2005의 엔씨소프트 부스에서 만난 제시 제인(24) 씨는 고향 앨라바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전시장 까지 날라온 그야말로 ‘시티오브히어로’의 팬이었다. 그녀는 “‘시티오브히어로’를 즐기면서 이걸 만든 사람들은 꼭 만나고 싶었다”며 “ 후속작인 ‘시티오브빌런’도 공개된다는데 안 올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변에 빠르게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제인은 “이전엔 스포츠게임이나, 슈팅게임, 레이싱게임 정도를 TV로 즐기는 정도였지, 인터넷에서 이러한 새로운 게임세계를 만날 지 상상치도 못했다”며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만나는 장소로도 활용되면서 주변사람들에게 함께하는 재미를 줄수 있도록 이용을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상용화된 ‘길드워’는 더 큰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북미와 유럽에서 상용화된지 단 1주일만에 패키지 25만장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올렸다. ‘길드워’는 블리자드 출신들로 구설된 스튜디오 아레나넷에서 만들었다는 브랜드 인지도까지 먹히면서 미국 온라인게임 간판작으로 퍼져나갈 정도로 확산세가 거세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도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내년 하반기쯤, 북미를 중심으로한 해외매출이 한국내 매출을 앞지를 것으로 본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온라인게임의 미국 진출 시초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로 알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인 98년 이미 넥슨의 ‘바람의 나라’가 상용화됐다.
국내에서도 10년 최장수 온라인게임으로 통하는 ‘바람의 나라’가 98년 7월 ‘미국진출 1호’ 한국 온라인게임이란 기록을 만들며 미국에 상륙한다. 이후 넥슨은 99년 1월에 ‘어둠의 전설’과 11월에 ‘택티컬 커맨더스’를 상용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터넷이 만들어진 나라이긴 하지만, 척박한 브로드밴드 보급 상황에서 그야말로 악전고투하며 한국 온라인게임의 불씨를 지펴온 것이 바로 넥슨이다.
척박한 인프라 환경을 이겨낸 또 하나의 주인공이 바로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다.
‘라그나로크’는 지난 2003년 5월 상용서비스에 들어간 이래 지난 1분기 최고동시접속자수가 92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 환경에 적용하자면, 동시접속자수가 현실 수치의 10배인 9만2000명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탄탄한 시장기반이다.
‘box3kr’라는 아이디로 Chaos서버에서 ‘라그나로크’를 즐기고 있는 한 이용자는 “원하는 길드에 가입해 함께 게임을 플레이하고 채팅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스토리성이 많이 가미된 장기 퀘스트를 좋아하고, 지리적 여건 때문에 길드모임을 직접 가질 수는 없지만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채널이 많아 ‘인터랙티브’를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그나로크’는 발렌타인데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시즌 등 미국인들이 즐기는 주요 기념일을 업데이트 타이밍으로 활용해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유명 서점체인인 ‘반디앤노블스’와 공동으로 라그나로크 만화책 마케팅을 전개해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어떤 온라인게임이 미국에 통할까?
일본 다음 가는 게임 소비국인 미국이 한국 온라인게임업체들에게는 중요한 시험무대가 아닐 수 없다.
세계최고의 IT기술을 보유한데다, 급속도로 깔리고 있는 브로드밴드 기반을 감안하면 중국 이상 가는 전략지인 셈이다.
미국은 비디오게임 천국이라고 할 만큼 비디오게임이 번성해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로스엔젤레스 쉬린오디토리엄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360’ 발표회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X박스 마니아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지경이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맞서 X박스는 ‘우리 게임기(Our XBox)’라고 불릴 정도로 애국심까지 작용하며 미국에서만 1400만대 가까이가 팔려나갔다.
지난 2001년 11월 첫 출시된 X박스 전용 ‘헤일로’ 시리즈는 지난해 11월 발매된 2탄까지 합쳐 모두 1000만장 이상이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온라인게임의 공략 방향이 중요한 이유가 그만큼 비디오게임시장의 아성이 두텁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현지 이용자 요구를 감안했을때 온라인1인칭슈팅(MMOFPS)게임의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역대 가장 많이 팔려나간 게임타이틀인 ‘헤일로’가 바로 FPS게임이다.
여럿이 동시에 접속해 즐기는 콘솔온라인서비스 모델은 이미 온라인이 지원되는 ‘헤일로2’로 성공 잠재력이 확인된 바 있다.
웹젠은 차기작인 MMOFPS게임 ‘헉슬리’를 PC온라인은 물론 X박스360용으로 개발해 미국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엔씨소프트가 세계 3대 개발자중 하나인 리처드 게리엇을 동원해 개발중인 ‘타뷸라라사’도 FPS 요소가 깊이 가미된 롤플레잉게임(RPG)이다.
FPS와 함께 성공 가능성이 큰 또 하나의 장르가 캐주얼게임이다. 밝고 신선하면서,결과 획득이 빠른 캐주얼게임이 대다수 미국인들의 정서와 꼭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두터운 스포츠게임 이용자층을 겨냥한 야구, 골프 등의 캐주얼 스포츠게임도 성공 가능성이 높고, 캐주얼 레이싱게임도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넥슨의 ‘카트라이더’는 이미 입소문을 타고 교포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PC온라인게임과 함께 콘솔진영으로의 온라인 접목도 전략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미 판타그램의 ‘킹덤언더파이어:더크루세이더즈’가 온라인 대응 X박스 타이틀로 대성공을 거두었듯이 온라인기능이 대폭 강화된 ‘X박스360’을 미국시장 공략 통로로 적극 활용할 것이 요구된다.
엔씨소프트와 웹젠 등이 ‘X박스360’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X박스360’이 사실상 PC를 대체하는 홈엔터테인먼트서버로 활용될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
로스앤젤레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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