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가 ‘말아톤’이었다. 정상인도 하기 힘들다는 서브스리(마라톤 42.195㎞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를 달성한 자폐아 청년 윤초원. 그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자폐아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많은 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기대 이상의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잔잔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주연 배우의 리얼한 연기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사회의 또 다른 한 축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도 한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웃음과 감동만을 안겨 준 그저 한편의 수작으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영화였고, 나는 이 영화를 대하면서 서로가 눈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자기 희생을 강요할지라도 그 뒤에는 우리가 함께 내달리는 삶의 이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또 다른 이웃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떤 고민에 갈등하고 있는지에는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평상시에는 서슴없이 ‘이웃’임을 말하며 어깨를 두드리곤 했지만, 자녀들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그들의 부모가 값비싼 사설 재활교육기관에 비해 한결 부담이 적은 공공기관을 찾게 되었을 때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자물쇠로 잠겨 있는 각종 시설을 보면서 등을 돌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에 바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비단 이런 시설만이 아니다. 어눌한 말과 예측할 수 없는 돌발 행동에 그들은 한결같이 따돌림의 대상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재활프로그램으로 살아가길 원했는지도 역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사회에서는 장애우들의 성공을 열악한 조건에서 일구어낸 ‘사건’으로만 보려 했다. 그들이 대학에라도 입학하게 되면 신문 지면에 실릴 기사로도 손색이 없었고, 영화 속 초원이처럼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만 하더라도 인간승리의 단면이라 하여 각종 매스컴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 속에 담긴 그들의 땀과 눈물이다. 사회복지의 기본적 가치가 사회적 연대와 사회 통합에 있음을 상기해 볼 때, 그들이 순간이나마 절망하고 무릎을 꿇었던 일들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세기를 뛰어넘어 존경받은 헬렌켈러에게는 그녀가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준 설리번이라는 훌륭한 선생님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조기에 모든 서비스를 받게 함으로써 장애의 제약을 극복하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체계적이고 제도화된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자폐증을 비롯해서 각종 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우들이 이 땅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그들을 바라볼 때 눈초리를 내리깔거나 동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볼 때만이 가능하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들의 부모님 역시 각고의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초원이가 보여주었던 가장 멋진 웃음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어느새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잔잔한 감동의 물결과 함께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법이다.
양원준 대전광역시 서구 만년동 154번지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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