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온기있는 동네 라디오방송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시골마을 한복판에는 꽃나팔 모양의 대형 확성기가 한두 개씩 자리잡고 있었다. 면사무소 행정 공고 사항이나 크고 작은 마을행사가 있을 때면 이장이 동네회관에서 이 확성기를 통해 그 내용을 알렸다. 잡음도 나고 방송이 고르지는 않았어도 짜증을 내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무슨 말을 하는지 귀담아 듣기 위해 하던 일도 잠시 멈췄다. 많지 않은 정보 속에 마을 주민 간 정보 소통의 수단이었던 동네방송은 그만큼 마을 주민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은 시골마을에도 꽃나팔 확성기가 사라졌고 동네방송을 하는 곳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정보 전달 수단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도시화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은 생활정보지가 지역 소식을 알려주고 있다. 케이블TV방송이 설치된 지역은 지역 방송국에서 가끔 보내주는 문자 행정소식을 접할 수 있다. 지자체 단위로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있어 언제든 정보 검색이 가능하다. 일부 대도시 지자체는 인터넷방송을 통해 각종 지역 뉴스나 발전상을 생생한 영상으로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지역 소식을 알려주는 미디어나 방식은 다양해졌지만 모든 주민이 여기에 접근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돈을 내야 하거나 첨단 IT기기를 작동할 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정보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보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예전 동네방송을 통해 느꼈던 서정적인 기쁨이나 진중함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사는 동네 얘기면서도 정보 전달 매체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지역소식을 전해주는 미디어가 하나 더 등장했다. 정통부가 ‘분당FM’이 신청한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허가한 것이다. 극히 적은 전파 출력으로 영화음향을 극장 일대에서만 FM라디오로 들을 수 있는 자동차극장처럼 1W급 출력 전파로 방송해 방송국 주변 5㎞ 내만을 가청취권으로 하는, 그야말로 동네 라디오 방송국이 경기 분당에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다. 분당뿐만 아니라 서울, 대구, 광주 등 8곳에서도 소출력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고 있어 본격적인 ‘동네방송’ 시대가 곧 열릴 전망이다.

 분당FM은 방송위에서 지상파 방송국으로 추천됐지만 정통부에서는 실용화 시험국으로 허가받았다. 때문에 방송위의 방송심의 기준을 적용 받지 않고 방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허가를 받았든 공중파 라디오 방송처럼 음악을 곁들여 방송할 것이지만 방송권역이 제한된만큼 방송내용은 아기자기한 동네정보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주민의 결혼 이야기와 수돗물 단수, 반상회 내용 등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주민 밀착형 방송이 될 것이 분명하다.

 라디오 방송은 라디오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다. 때문에 인터넷이나 케이블TV방송처럼 정보격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은 라디오 방송에 대한 기대는 결코 작지 않다. 해외에서는 ‘공동체 라디오’로 더 많이 불리듯 무엇보다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거대 미디어들이 그동안 간과해온 미디어 본연의 기능인 ‘소통(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결정이나 사업에 대해 토론하고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이 한편으로 우려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왜곡된 정치적 성향을 띨 수 있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해야 할 사항임에 분명하다.

 예전에 마을 이장이 방송하던 것처럼 다소 서투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느낌이 드는 지역밀착형 방송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존 방송의 틈새를 파고들어 ‘온기 있는’ 동네 라디오 방송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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