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세이부그룹의 사례

 우리에겐 세이부 라이언스라는 프로야구단으로 귀에 익은 세이부그룹은 철도·버스 등 대중교통 사업과 골프장·스키장·리조트·호텔 등 레저사업을 주로 하는 사업체다. 도쿄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인 세이부철도가 간판 기업이지만 사실상 ‘고쿠토’라는 지주회사에 의해 그룹 경영이 이뤄졌다.

 일본 재계가 최근 세이부그룹의 대표기업인 세이부철도의 상장 폐지 문제로 한바탕 소동을 겪고 있다. 세이부철도가 수년간 거래소에 제출한 유가증권보고서에 대주주 보유 지분을 과소 기재하는 수법으로 투자자를 기만했다는 사실이 적발되면서 거래소로부터 상장 폐지 결정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상장 폐지 사유가 회사부도나 경영부실이 아니라 상장기업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경영투명성과 정보공개 의무 태만이란 점에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이번 세이부철도의 상장 폐지는 경영 투명성 확보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현행 도쿄증권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기업은 주식의 유동성을 높이고 적정 수준의 주가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10대 주주의 지분이 80%를 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세이부철도는 비상장 기업인 고쿠토가 차명 주식과 계열사 위장 지분을 통해 8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세이부철도라는 상장기업의 경영이 8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비상장 지주회사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사실은 투자자들과 증시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거래소 측은 세이부철도의 잘못된 정보 공개가 증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판단해 상장 폐지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고쿠토의 세이부 철도에 대한 지배는 오래 전부터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능적으로 이뤄졌다.

 이른바 ‘고쿠토 관리주’라고 일컬어지는 위장 주식의 존재는 대주주의 전횡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40여년간 운용된 ‘고쿠토 관리주’는 관계사 임직원이나 퇴직한 직원들 명의로 비밀리에 관리되던 주식이다. 회사 측은 관리주의 존재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심복을 회계원이나 주식업무 담당자로 배치해 왔다. 이들은 타부서로 전환 배치되지 않고 장기간 주식관리 업무만 해왔다. 따라서 사주나 몇몇 주식 담당자를 제외하곤 관리주의 존재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사주 측은 1000개가 넘는 개인 인감을 확보해 위장 지분을 치밀하게 관리해 왔는데 경악할 만한 사실은 주식명의인이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다. 배당금 지급을 위해 별도 금융계좌를 운용하고 주주총회 소집요구서를 임의로 처리하는 등의 전횡이 이뤄졌다. 주주총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회사 편을 들어 주는 총회꾼들에게 토지를 헐값에 제공하는 등 특혜도 있었다.

 이같이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상장 폐지 결정이 난 세이부그룹은 부랴부랴 경영개혁위원회를 구성, 그룹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일본 금융감독청 역시 기업의 허위·부실 재무제표에 대한 대대적인 감독에 나서는 등 법석을 떨고 있지만 이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세이부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증권집단소송제와 CEO의 재무제표 서명제도 도입을 앞두고 있다. 이는 사주의 전횡이나 거짓된 정보공개로 기업들이 이윤을 얻는 게 힘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미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과 경영 투명성의 확보는 시대적인 대세다. 세이부그룹의 사례는 진정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사주의 독단 경영에서 하루 빨리 탈각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는 점을 통렬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국제기획부 장길수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