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정률 그라비티 회장(2)

사진: 지난 92년 ‘1000 만불 수출의 탑’ 수상을 직원들과 함께 자축하는 필자(왼쪽에서 두번째).

(2) 바이어와의 약속

내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게임보드 제작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홍콩 등지의 바이어들이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아오기 시작했던 83년 무렵, 본격적으로 게임 보드를 제작하기 위해 난 ‘선일렉트로닉스’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외국의 게임 바이어 목록을 찾아 텔렉스를 보내고, 지리한 협상의 시간이 흐르던 중 드디어 홍콩의 ‘와이리사’에서 첫 답신이 왔다. 그 길로 당장 홍콩으로 날아갔고, 그 자리에서 바로 10만 달러 상당의 주문을 받아낼 수 있었다. 홍콩을 시작으로 물꼬를 튼 수출 사업은 대만을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까지 세계 30여 개 국으로 확대됐다. 그 후 88년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서 수출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활기를 띠게 됐다. 공장을 300평으로 확대하고 직원을 120명으로 늘려도 수주 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외주 공장을 3개나 둬야 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그 날도 바이어로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평소 물량보다 곱절은 많은 주문 양이어서, 직원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기한 내 물건을 납기 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핵심 부품인 반도체칩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이어와의 약속 기일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거래선을 모두 끌어 모았지만 국내에서는 그만한 반도체 칩 물량을 충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넘쳐나는 해외 수요로 인해 부품 물량이 한참 달리던 때였다. 인근 국가들에서도 단 시일 내 주문한 물량만큼의 반도체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밤샘 회의 끝에 찾아낸 해결책은 뜻밖에 일본에 있었다. 유학 시절 국내보다 훨씬 게임 산업 규모가 컸던 일본 중고 컴퓨터 시장이 떠오른 것이다.

그 즉시 직원들과 현해탄을 건너가 두 달여 동안 일본 전역을 누비며 중고 컴퓨터와 중고 게임기 보드를 수거했다. 낮에는 중고 컴퓨터 수거를 위해 다리품을 팔고, 저녁에는 도쿄 뒷골목 한 켠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부품을 뽑아냈다. 납 가루가 날려 얼굴이 뿌옇게 되고 숨쉬기도 가쁜 힘든 나날들이었다.

결국 일본에서 2달 여 간의 고생한 결과 납품에 필요한 30만 개의 반도체 칩을 수거했고, 바이어와 약속했던 납기일도 지킬 수 있었다. 이 소문이 알려지면서 남미 지역까지 거래선이 더욱 늘어났고, 전화위복으로 이 사건은 사업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해외 시장 공략에 자신이 붙으면서 1년의 반을 해외에서 살다시피 하며 주요 거래국 25개의 바이어를 관리했다. 90년 대에 들어서 중국이 개방 물결을 타면서 수출이 호조를 보였고, 연간 2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다리품을 팔고, 납 가루를 뒤집어써가며 인연을 만들었던 거래처들은 아직까지도 거래를 하고 있고, 한번 얻은 신의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도 내 휴대폰은 전 세계를 향해 수신 대기 중이다.

kimjr54@gravi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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