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정률 그라비티 회장(1)

빌린 돈 50만원으로 기판 제작회사 설립

① 창업에 대한 열정

‘게임’과 나의 인연은 유원지 오락실에서 시작됐다. 당시 형이 운영하던 유원지 오락실이 확장세에 있었고, 일손이 많이 달리는 상태였다. 직원보다는 가족 같은 믿을 만한 일꾼이 필요했던 형의 부탁으로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형을 도와 오락실 운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일이 나 김정률의 25년 게임인생의 계기가 될 줄은 당시로서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생각보다 일은 고되었다. 오락실내의 청소와 집기의 정리정돈은 물론 오락기계의 정비와 손님의 시중 등 새벽부터 밤 늦도록 단순하고도 궂은 일의 반복이었다.

당시 나의 몸은 고단했지만 한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무일푼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창업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러한 열정은 남들이 보기엔 별반 배울 것이 없어 보이는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일에서 조차 무엇인가를 얻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곳에서 터득한 것들 중 한가지를 소개하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길렀다는 점이다. 그 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반년쯤 될 무렵부터, 오락실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척 보는 순간 그 손님이 좋아하는 게임의 유형이 무엇일지, 몇 시간이나 게임을 할 것 같은지, 단골이 될지 뜨내기 손님일지 심지어는 손님의 수중에 돈이 많을지 적을지 등을 십중팔구는 맞추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선천적인 기질에서 오는 영감 탓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당시 무일푼인 내가 창업에 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주변에서는 코웃음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창업에 대한 나의 열정은 강렬해서 오락실을 찾는 손님의 속내를 꿰는 일 뿐만 아니라 오락실의 게임기 속의 회로와 부품의 이름과 기능까지 나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형의 그늘에서 일을 한지 2년 만에 형으로부터 창업자금 50만원을 빌어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실로 떨리고 가슴 벅찬 일이었는데, 청계천의 세운상가에 ‘이화전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세 평짜리 공장에서 직원 두 명과 오락실 게임용 기판을 제작해서 납품을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락실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게임보드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주문을 받기 위해 청계천 일대의 거미줄 같은 골목과 건물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오르내리느라 저녁이면 몸은 파김치가 되고 부은 발등위로 소금기가 허옇게 오르곤 했지만 중요한 것은 꿈에도 고대하던 나의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점차 매출이 올라가고 일에 탄력이 붙으면서 국내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당시는 세계 무대에서 일본이 선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83년, 기회는 찾아왔다.

kimjr54@gravi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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