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21세기의 신기술로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나노기술(NT). NT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산업과 연계돼 이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술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과학기술 선진국인 영국은 1986년 통상산업부(DTI)가 국가나노기술전략(NION:National Initiative On Nano-technology)을 발표했다. 이 때 이미 미국·독일·일본보다 앞서 나갔다. 2년 후인 1988년부터 4년간 링크 NT 프로그램(LNP:Link Nanotechnology Programme)을 진행하는 등 영국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NT 육성에 나섰다.
이런 점을 보면 영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나노기술력을 앞세운 나노혁명을 일으켜 부흥을 꿈꾸는 대표국가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 나노포럼에 영국대표로 방한한 옥스퍼드 대학 재료공학과 조지 스미스 교수와 이조원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이 만나 영국과 한국의 나노기술 현주소와 발전방향 등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이조원(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영국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초과학이 강하고 또 NT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앞선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영국의 NT 개발 현황은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조지 스미스(옥스퍼드대 재료공학과 교수)=그렇습니다.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 NT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1996년 링크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난 이후 나노과학과 관련한 산발적인 연구 지원은 계속됐지만 정부차원의 지원정책이 잇따르지 않았습니다. 이후 다소 침체된 감이 없지 않지만 영국 과학계는 나노기술 연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요. 영국의 과학자들은 공학자연과학연구회(EPSRC:Engineering and Physical Sciences Research Council)를 통해 ‘NT의 날(Nanotechnology Theme Day)’을 개최하는 등 전 영국의 연구계를 결집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NT를 단순히 기술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사회의 성장 관계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NT 애플리케이션 산업의 기회’라는 책자를 발행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조원=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 NT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고 NT 연구개발 투자에 본격 나섰습니다. 바로 이 계획의 1단계가 종료되는 해가 올해입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는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인 △테라급 나노소자 개발 △지능형 마이크로 △나노메카트로닉스 △나노소재 기술개발 등 대형 사업단을 구성했습니다. 또 △나노핵심기반 △극미세구조 △신기술융합 △정보지원체계 등 나노연구개발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과학재단을 통한 나노기초기술 육성을, 창의적 연구진흥사업과 국가지정연구실 사업 등을 통해 NT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연구자들은 “정책입안자들이 NT의 상업화 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1단계가 지났을 뿐인데 성과가 없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죠.
◇조지 스미스=많은 정책입안자들은 과학이나 기술이 가져올 성과를 성급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영국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과 영국이 다른 점은 찰스 황태자가 NT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인다는 점일 것입니다. 찰스 황태자는 NT가 사회와 문화 등에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반영, 영국은 NT 영향평가를 실시토록 해 NT연구개발 예산의 약 1% 가량을 기술영향평가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찰스 황태자가 NT의 영향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만큼 이 기술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기술 선진국들은 제품생산이 아닌 원천기술 확보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조원=그렇다면 언제쯤 NT가 실생활에 적용되는 상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조지 스미스=이미 NT는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활용되고 있습니다. NT는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 기술 등에 널리 활용됩니다. 이미 차세대 컴퓨터와 정보저장 등에 활용되고 있는 NT의 다양성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보기술 분야와 함께 제일 주목해야 하는 분야는 바로 바이오기술입니다. NT는 바이오 센서나 약물전달시스템(DDS) 등 개발에 아주 적합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나이가 들면서 약을 먹어야 하는 시간을 종종 잊어버리기 일쑤지요. 이 때문에 똑똑한 약(Smart Medicine) 시스템이 알아서 정확한 시간에 약을 투여한 효과를 내는 시대가 옵니다. 특정 부분에만 가서 작용하는 약물전달시스템이 등장할 전망입니다. 마치 정확한 목표 지점에 가서 작동하는 크루즈 미사일과 같이 몸 안의 암에만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조원=기존 기술을 이용한 전통적 NT 개발로는 70나노미터(㎚) 공정기술까지 확보됐으나 혁신적 NT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전통 나노기술은 하향식으로 미세가공기술의 극한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 D램은 현재 70㎚선 폭까지 제작할 수 있으나 원천특허 확보 가능성 작지요. 이에 따라 우리는 혁신적 연구를 통해 하향식과 상향식 연구를 같이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결국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소자 등의 성능을 혁신하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원자 및 분자 수준의 물질합성 제어하는 것은 원천특허 확보가 용이하고 이는 결국 기술은 물론 산업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조지 스미스=나노기술 장비 시장의 경우 매우 크게 확장되고 있고 연구개발 그 자체가 시장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비자인 연구자들은 나노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페브리케이션과 측정장비 등을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합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설립한 벤처기업인 나노사이언스사는 3차원 원자 프로브를 개발해 비즈니스에 나선 상황입니다.
◇이조원=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나노과학과 NT를 더욱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한대로 일반인의 이해와 함께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발전 계획에 대한 새로운 로드맵을 잡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렇다면, 영국 과학자로서 이렇게 발전하는 NT를 발전시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지 스미스=언급한 대로 우리는 과학자들이 아닌 일반인과 다른 분야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는 그들과 파트너십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또한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항상 토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그들이 새로운 시대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과학자들은 답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참여와 용기를 존경해야 합니다.
◇이조원=동감입니다.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일반인과 정책입안자들이 기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자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나노기술은 현재 탐색단계로서 50년대 컴퓨터 기술과 비슷한 개발 수준입니다. 앞으로 2020년께에 산업화 초기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나노 산업 초기화가 예상되는 2025년은 자동차가 상업화된 1913년, 컴퓨터의 1969년의 산업 초기화 수준과 동일합니다. 이런 산업적 흐름과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바로 나노기술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직접 경험한 한국 연구자들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지 스미스=한국 연구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갖가지 새로운 연구와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이미 NT에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소자와 나노분자를 이용한 상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리=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etnews.co.kr
사진=윤성혁기자@전자신문, shyoon@wtnews.co.kr
◆대담자 프로필
◇이조원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 단장(52)은 78년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86년 미국 팬 스테이트 대학에서 금속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8년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85년부터 90년까지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원을 지냈다. 이후 92년 삼성종합기술원 신소재연구실장을 시작으로 삼성의 차세대 메모리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95년 세계인명사전인 ‘후즈 후 인 더 월드(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됐으며 2000년 과기부의 중장기 연구개발 사업인 21세기 프런티어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올해 과기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의 ‘2004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명에 선정되는 등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조지 스미스 옥스퍼드대 재료공학과 교수(61)는 61년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68년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96년부터 옥스퍼드대 재료공학과 교수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옥스퍼드대 재료공학과 학과장을 맡았으며 2002년 나노기술 벤처기업인 옥스퍼드 나노사이언스를 창업했다. 옥스퍼드 나노사이언스는 같은 해 장비기업인 포라론 그룹으로 흡수됐다. 옥스퍼드 나노사이언스사는 3차원 원자 프로브를 개발해 영국은 물론 일본과 세계 각지에 장비를 판매하는 등 나노기술 상업화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이다.
조지 스미스 교수는 재료공학자로 원자 레벨의 마이크로 구조물과 구성, 특성 제어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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