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각국은 이동수신방송 기술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은 이동수신방송 수신기의 수요뿐만 아니라 시장 자체의 잠재력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동수신방송 수신기는 고정수신방송 수신기와는 전혀 다른 제품이다. 게다가 이동수신방송 수신기는 승용차, 버스, 지하철, 기차, 선박 등 이동체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휴대전화에 장착될 것이다. 이럴 경우 이동수신방송 시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이 이동수신방송 수신기 개발과 원천기술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까닭도 모두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상파 DMB의 독자기술을 몇 개 개발해 놓고 있지만 원천기술의 대부분은 유럽의 것이다. 유럽의 디지털 전송방식인 DVB-T는 고정수신은 물론, 이동수신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 별도로 이동수신에 더 적합한 신기술이 속속 개발돼 시험방송에도 나서고 있다. DVB-T를 이동수신에 적합하게 개량한 노키아의 DVB-H와 퀄컴의 미디어 플로라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이동수신방송으로 각광받고 있는 DMB도 본래는 유럽 기술이다. DMB는 지난 1990년대 초에 DAB라는 이동수신이 가능한 디지털 라디오용의 유럽기술에 독일의 보쉬가 DMB라는 이름을 붙여 비디오 중심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을 일본, 한국, 중국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일본은 위성 DMB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일본기술을 채택한 우리의 위성 DMB는 일본에 특허료를 물어야 한다. 반면에 지상파 DMB는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만일 외국에서 우리 기술을 채택할 경우 우리나라가 특허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상파 DMB 기술에 낙관만 하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중국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지상파 DMB를 개발해 시험방송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DVB-T를 비롯한 다른 이동수신방송까지 시험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KBS기술연구소는 지상파 DMB의 전송을 위한 헤드엔드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방송계 최초로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치하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겨우 독자적인 기술 하나 개발했다’는 우리 방송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수도 있다. 일본 NHK 방송기술연구소의 기술개발에 비한다면 긍지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방송 기술 개발에 나선다면 경쟁국들보다 앞선 기술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 같은 가능성은 디지털 방송에서 열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방송의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를 앞서가고 있다. 모두가 우리 전자업체들이 디지털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한 덕택이다. LG는 ATSC 방식의 디지털 방송에서, 그리고 삼성은 신호압축기술 등에서 상당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지상파 DMB에서도 독자기술을 개발했다. 우리 가전업체들도 디지털 기술부문에서 이미 상당 부분 세계 특허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도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방송기술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 DVB-H, 미디어 플로 기술을 포함한 기타 이동수신방송의 기술 개발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방송 서비스 기술 연구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아날로그 방송에서는 우리가 일본이나 미국에 뒤졌지만 다행히 디지털 방송에서는 선도하는 부분도 생겼다. 이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 전자업계는 물론 방송계도 방송기술의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방송위, 정통부, 산자부 등의 적극적인 정책적, 재정적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hslee@kb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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