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V 안방혁명](3)TV경제학-1980 vs 2004

 1980년 컬러TV 방영이 시작되기 전에는 전자제품의 연간 수출액이 고작 10억달러. 내수 생산도 20억달러대에 머물렀다. 전자부품 국산화도 전무한 실정.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한 것이 바로 이 컬러TV 보급과 전자산업 육성정책이다.

 전자공업진흥법을 바탕으로 ‘전자산업 장기 육성 계획’을 마련해 TV완성품 조립 제조 기술 뿐만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 육성에 대한 거대한 수뢰 바퀴 가동을 시작한 것. 오일 쇼크로 인한 마이너스 성장을 딛고 허덕이는 국민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금리 인하, 대출 및 세제 혜택 정책 등 각종 경제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당시에는 컬러TV와 냉장고 등 내구성 소비재에 대해서 정부가 특소세 감면 혜택 뿐만 아니라 구입가격의 80%까지 융자, 분할하는 지원책도 내놨다. 업계의 판촉전과 컬러TV를 확대 보급하기 위한 각종 묘안들도 쏟아져 나왔다. 각 사별로 사내 판매를 실시했고 여대생과 주부가 판촉요원으로 나섰다. AS지점도 생겼고 허니문 세일도 이 시기에 나왔다.

가격 경쟁도 시작됐다. 가장 먼저 선수를 친 것이 삼성전자. 30만원하던 14인치 컬러TV를 25만원으로 먼저 내리자 금성사(현 LG전자)도 26만원대의 신기종을 내놓았다. 수출에 주력하던 대한전선도 내수형 TV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대량생산과 관련 부품산업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는 반도체·부품 산업까지 함께 성장하면서 1988년 전자제품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하게 된다.

그러나 컬러TV 도입의 가장 큰 효과는 ‘국민 사고의 혁신’에 있었다. 50년 전후 이후 흑백의 암울한 시절을 지나왔다면 컬러TV 보급은 88서울올림픽까지 이어지면서 ‘도전과 혁신’의 사고로 변화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이같은 역사적 경험을 가진 상황에서 2004년 디지털TV에 거는 기대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컬러TV가 부품, 제조 등 전자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면 디지털TV는 IT컨버전스의 중심에서 인터넷, 콘텐츠, 문화, 유통 등 각종 산업군을 융합해 성장시키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TRI는 최근 DTV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생산 유발 효과 229조원(기기: 166조원, 서비스: 63조원) △취업유발효과 126만명 (기기: 87만명, 서비스: 39만명) △방송기기의 수출액 563억 달러 △무역흑자 149억 달러라는 구체적 수치를 내놨다. 세계적인 디지털 방송 전환정책에 힘입어 2008년까지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가구가 연평균 20%씩 증가해 전세계 3억명의 인구가 디지털 방송 인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성선 ETRI IT정보단 정보조사분석팀 선임연구원은 “이미 아날로그 TV 산업에서 확보한 경쟁력과, LCD, PDP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보유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TV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조사에는 금융,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DTV가 가져올 부가적인 유발효과는 다 담지 못했다.

 ‘돈 벌어주는 TV’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단순히 방송을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별 기능이 없었던데다 일방적으로 정권의 대변인 역할을 하거나 스포츠·섹스 등의 몽롱한(?) 콘텐츠로 시청자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요즘 사람들은 “TV로 돈을 번다”고 말한다. TV를 제조하는 전자업체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 만이 아니다. 부품, 유통, 물류, 콘텐츠 등 후방산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나아가서는 TV에 등장하는 물건을 만들고 유통시키고 파는 사람들도 TV의 힘을 빈다. 시청자들 역시 TV를 통해 물건을 사고 돈되는 정보를 얻긴 마찬가지다.

 TV가 경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세계 제2차 대전이후 컬러TV가 대중화되면서이다. 앞서 흑백TV시절도 있었지만 TV를 정치·문화의 도구에서 상업·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바꾼 것은 이 때부터다. 관련 제조산업을 일으키고 의류·식품·유통업까지 활성화된 계기가 됐다.

  디지털TV 시대, TV로 금융과 유통이 가능한 t커머스 시대가 되면 TV는 더욱 더 확연하게 돈의 흐름의 중심에 설 것이 분명하다. DTV가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나 사고의 혁신이 어떤 방향을 전개될 지는 아직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80년대 컬러TV가 전자산업을 일으켰다면 이제 DTV는 IT컨버전스의 구심점으로 경제·산업·문화·사회를 아우르는 거대한 변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DTV 제대로보기

 연립주택이나 아파트 등에서 디지털TV를 수신하기 위해서는 크게 UHF안테나 설치, 케이블방송 연결, 공청안테나 설치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케이블방송에 가입하거나 UHF안테나를 설치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케이블방송에 가입하면 적게는 월 5000원 정도에서 유료방송 수신시 1만8000원까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다양한 케이블채널을 원하는 소비자라면 별 문제지만 단지 디지털방송 수신용으로 한달에 지불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소리도 있다.

UHF안테나 설치시에도 비용이 든다. 소비자가 직접 설치할 경우 안테나 비용은 2만∼5만원 가량 든다. 전문가가 방문해 설치하면 10만원 이상 소요된다. UHF안테나는 일반 주택이나 연립주택 뿐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베란다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TV는 주택건설촉진법 제38조(공동주택의 관리)나 주택건설기준등에관한규정 제42조(텔레비전공동시청안테나 등), 텔레비전 공동시청 안테나시설 등의 설치기준등에 관한규칙 제5조(신호의 전송) 등 관련규정에 의해 공시청 시설이 의무적으로 갖춰져 있다. 그러나 디지털TV는 실질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은 입주자들이 별도의 설비 없이도 DTV 시청이 가능하도록 공시청 장치를 설치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공청 설비가 갖춰진 아파트는 서울 가락동 쌍용아파트가 거의 유일하다. 이 아파트는 약 2000세대 규모로, 지은지 7년이 지나 신축 아파트는 아니지만 지난해 공청설비를 갖춰 현재는 가정내 벽에 설치된 TV단자에 디지털TV 또는 셋톱박스를 연결하기만 하면 누구나 DTV를 볼 수 있다. 공청설비를 갖추려면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갖춰진 헤드엔드 시스템의 `디지털프로세서`를 설치해 주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아파트 입주자들이 관리사무소에 공청시설 설치를 요구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홍보나 인식이 부족으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DTV공청시설 의무화를 통한 인증제 등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DTV를 시청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관련업계 및 마니아들의 주장이다.

◆올림픽 이모저모

 *올림픽 치안 담당 그리스 경찰, 한국 무전기 사용키로

무선통신기기와 영상감시기기를 생산하는 유니모테크놀로지(대표 정진현)는 아테네 시정부에 올림픽에 사용될 무전기 500대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회사관계자는 "이번에 공급하게 될 무전기는 수출용 무전기 PJ모델로 올해 유 럽 안전규격인 CE 인증을 획득해 기술을 인정받은 제품"이라고 소개했다.PJ모델은 다용도 산업용 무전기로 그래픽 LCD 디스플레이가 가능하고 키 장금 장치, 사용자 암호설정기능, 128 채널에 16그룹 통신이 가능하다.

 

*올림픽 참가단 결단식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하는 태극 전사들이 29일 서울올림픽공원에서 이해찬 국무 총리와 이미경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반스탄틴 드라카키즈 그리스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결단식을 가졌다.

이날 선수 및 관계자 2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결단식에서 이연택 KOC위원장은 "반드시 10위 이내에 진입해 한민족의 위상과 긍지를 드높이겠다"고 밝혔다. 신박제 선수단장은 "국민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고 사회 통합과 발전에도 기여하는 선수단이 되겠다"고 말했다.

*올림픽 한국선수단 안전위협 최고등급 분류

그리스 정부가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에 대한 안전위협 정도를 미국. 영국과 같은 최고등급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박흥신 문화외교국장은 29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그리스 정부는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각국 선수단별로 안전위협 수준을 5단계로 나누고 있다"며 "당초 한국 선수단은 중간 단계로 분류됐는데 지난 주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이) 중동에 파병하는 것을 고려해 미국, 영국과 같은 급으로 분류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 것이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히틀러, 전두환과 TV

 TV가 인류의 기본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자리잡은게 언제부터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936년 독일 히틀러 정부에 다다른다.

당시 히틀러는 나치즘에 대한 비판적 국민 여론과 관심을 스프츠로 돌려야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하에 영국 EMI 엔지니어 쇤베르크가 개발한 진공관TV를 들여와 베를린 올림픽 중계를 시작했다. 이제 막 라디오 방송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초창기였는데 영상과 음성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TV등장은 국민들의 폭발적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또 스포츠라는 역동적 콘텐츠는 히틀러의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이후 독일에서의 대대적 성공에 힘입어 미국 CBS, NBC도 일제히 흑백TV 방송을 실시했고 1940년에는 진공관식 컬러TV가 완성됐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텔레비전 수상기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보급됐다.

1980년 9월 취임한 전두환 대통령은 그해 12월 과감하게 컬러 TV방영을 허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 오일쇼크 이후 컬러TV 방영은 흑백TV의 보급 한계로 엄청난 수요 유발 효과가 있다는 산업계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조장하고 국민계층간의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우려를 들어 방영을 금지했던 것. 당시 한국내쇼날, 금성사, 삼성전자 등이 수출용 컬러TV를 생산중이었다.

반면 전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컬러 TV방영을 전격적으로 허용하고 산업계의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후 ‘전자공업 진흥계획’ 등 각종 전자산업 육성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오늘날의 전자산업 기틀을 마련하고 경제살리기로 국민들의 마음잡기에 나선 것.

비록 TV보급이 독재·군사정권의 정치적 의도였지만 결국 인류의 전자산업과 방송발전사에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