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정치와 정책’ 그리고 원칙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급기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나타났다. 사회 분위기가 극도로 어수선해서인지 마음이 무겁다. 정치는 모르지만 공직자 입장에서 급박한 국정 현안에 무관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가 정책의 방향을 잡고, 정책이 정치의 틀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하는 ‘국책연구원장’으로서 이제 작은 정치 뉴스에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디지털한국의 미래’라는 주제의 TV 대담을 불과 2시간 앞두고 국회의 탄핵표결 장면을 지켜 본 나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현실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 무슨 여유로 미래를 논할 수 있으며, 아날로그적 ‘후진정치’가 건재하는 상황에서 디지털정책을 운운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오늘 사과나무는 심자’라는 생각에 행사장에 들어갔지만 대담 당시 사회를 어떻게 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정치와 정책은 어떤 관계일까. 의연하게 업무를 충실하게 추진하려고 해도 국론이 분열되면 국가정책의 집행 속도에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기 중심사회건설’ ‘차세대 전자정부구현’ ‘신 성장동력’ 등 과제들이 제 속도를 내며 추진될지 의문이 앞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회의 힘에 내각이 휘둘리고 장관의 말 한 마디에 증권가가 술렁이는 것이 현실인데, 탄핵 정국에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진행될 리 만무하다. 누가 정치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무의미하고 정책의 뒷받침 없는 정치는 공허한 메아리라 했던가. 그 말이 새삼 가슴으로 느껴진다.

 전에는 정책개발에 있어 정치성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의 눈치를 보다보면 정책이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일례로, 디지털TV 수신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몇 년째 되풀이되는 것도 정치적인 고려 때문일 것이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명제는 정통부와 방송위의 힘겨루기로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 통신서비스시장의 ‘쏠림현상’이 극복되지 못하는 이유는 ‘유효경쟁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데서 기인하지는 않는가. 정책이 정치를 포용하느라 원칙까지도 상실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와 반대로 정치가 정책논리에 심하게 의존하면 오히려 실효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통합과 분배의 정치철학은 정책적으로 우선 판단할 사안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조목조목 따지느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가 지지부진 힘겹게 추진되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가시적 실적이 단기간에 안 나타난다고 해서 젊고 유능한 벤처인들을 실업자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될 일이다. 이 경우에는 정책이 정치 다음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방향성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왜곡이 되어 있다. 정치를 모르면 무능한 공직자이고, 정책을 모르면 무지한 정치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치쪽을 의식하면 소신이 없다 하고, 정책만 강조하면 정치적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고 하니, 필자같은 교수출신 공직자는 정말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책연구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오로지 정책에 전념해야 한다. 연구에 정진해야 할 연구원이 정치적 논리에 좌우된다면 관료 눈치, 업계 눈치, 소비자 눈치를 보느라 그 와중에 갈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경쟁의 기본원칙이다. 예측 가능한 게임의 법칙을 제시하여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기업들이 각각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으로 ‘2만 달러 시대’를 여는 현실적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할 때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원칙을 중시하며 맡겨진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주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johnhlee@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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