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영화 교과서가 생겨났다고 한다. 게임 교과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게임과 사촌쯤 되는 엔터테인먼트 한 갈래를 위한 교과서가 생겼다는 것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게임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게임도 좋은 문화의 한 갈래로 교과서에 소개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현대 사회에서 게임이 갖는 문화성과 사회성, 언어성, 산업성 등을 또박또박 정리해준다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소중한 문화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게임 교과서가 정식으로 나오지 않은 이때 게임개발자로서 본란을 빌어 학교에서는 정의해주지 않는 게임을 나름대로 한번 정의해볼까 한다.
첫째, 게임은 ‘휴식’이다. 필자는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다독여 주는 휴식 같은 게임을 꿈꾼다. 규격화된 도시의 삶, 촘촘한 네트워크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온갖 전파로 가득한 세상 안에서 뛰고 또 뛰어야 하는 게 현대인의 삶이다.
게임은 이런 현대인의 모난 일상에 여름날 한줄기 바람과 같은 작은 휴식을 안겨준다. 게임 안에서 교복을 벗고 마법사가 되고, 넥타이를 풀고 요정이 되며, 하이힐을 벗고 용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현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치유를 맛보기도 한다.
사각 모니터 안으로 빨려드는 어두운 ‘도피’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다른 일상이자 탈출로서의 게임, 이것이 휴식으로서 게임인 것이다.
둘째, 게임은 잊었던 감정들의 ‘만끽’이다. 현대인들은 많은 감정들이 결핍된 채 살아가고 있다. 용기, 스릴, 우정, 사랑, 도전 등등… . 그러나 게임에서는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게 해 준다. 감정의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카타르시스의 또다른 이름이다. 감정이 넘치기에 게임은 재미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유년시절에 지구를 지키는 로봇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가슴 벅찬 감정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외치는 주문을 함께 외치며 악당을 물리치던 그 감정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벅찬 감정은 고사리 손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히게 할 만큼 진지하기도 하고 옆에 있던 친구와 가슴을 열고 소중한 우정을 나누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된 벗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게 현대인의 심리다. 게임이 주는 소박하지만 넘치는 ‘감정의 바다’, 모두 잊고 만끽할 수 있는 ‘감정의 폭발’, 잠을 이룰 수 없을만큼 잊을 수 없는 ‘재미’ 등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게임을 만든다. 재미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끼니를 사고, 입을 옷을 장만하듯 게임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만드는 것은 게임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직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밥을 지어 파는 사람이 그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는 사람들을 볼 때 행복하듯 게임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하며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들을 볼 때 그제서야 자신이 만든 게임이 완성됐다는 기분이 든다. 백 마디 말보다 게이머들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 한 자락이 더 의미있는 일이다. 그 웃음이야말로 그 게임이 제 몫을 충분히 다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저 사람으로 하여금 휴식하게 해주고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게임이다. ‘게임낭만가’를 부르고 싶다. 교과서에도 어서 ‘게임낭만가’가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관호 위메이드 대표 azura@wema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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