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옥의 맛있는 수다]스크랩할 수 없다면 기억하라

 요즘 방송사마다 못 모셔서 애가 타는 인물이 하나 있다. 장안의 입담꾼 김제동이 바로 그 인물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개그맨으로 데뷔한 것도 아니고, 연기를 잘해서 방송가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김제동의 입만 보고 있다가 한마디 한마디에 무릎을 치면서 열광한다. 풍부한 상식, 순발력, 특유의 재치가 웬만한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한다.

 그가 이렇게 남다른 입담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FBI도 놀랄(?) 대단한 정보력에 있다. 무엇보다도 신문을 꼼꼼하게 읽고 스크랩하는 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4개 이상의 신문을 보며 만들어낸 스크랩북이 벌써 10여권이나 된다는 그는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같은 사안에 대해 신문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부분을 흥미롭게 보면서 비교 분석하고 자기 의견을 적어두는 일을 습관화한 것이다.

 그러나 김제동이 신문 스크랩만 모아두느냐. 그건 아니다. 책에서 얻는 명언은 모두 기억해 머리 속에 담아두고, 심지어는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붙어 있는 ‘오늘의 말씀’까지도 스크랩할 수 없다면 기억해버리는 그의 노력이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했다. 인터넷 팬카페에 있는 ‘김제동 어록’은 이런 노력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훌륭한 분들이 남겨 놓은 말 70%에 자신이 생각해낸 말 30%가 더해진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것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것을 시간 들여 읽고도 전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도 많다. 읽다가 좋은 구절이 나와도 기껏 밑줄이나 긋는 정도이지, 책을 모두 덮은 후에는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다시 재구성한다던가, 자신의 삶 속에 그 에센스를 녹일 줄 아는 능력을 갖기 어렵다.

 요즘은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아주 중요해졌다. 말하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프레젠테이션하는 시간이 사지에 다녀오는 기분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혀끝에서 나오는 말만으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고 웃길 수도 없다.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충분히 쌓아둔 것이 많고 수많은 경험에서 오는 성숙한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은 사람이다.

 <전미옥컨설팅 대표 sabop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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