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레전자 정문식 사장(1)

 특전사에서 하사관으로 5년간의 군대 생활을 마친 후 걸래 장사를 하는 것으로 나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불투명한 미래때문에 전선을 가공하는 ㅎ전자의 생산직 사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취직을 하면서 세운 목표는 3년 동안 열심히 일을 배워 독립을 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고 이를 지켜본 사장님은 봉급 이외에도 항상 보너스를 얹어 주었고 승진도 남들보다 빨리해 1년만에 관리직에 올라갈 수 있었다.

 ㅎ전자 사장님은 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운영하는 같은 건물에 있는 카스테레오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카스테레오를 만드는 회사는 고급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이고 자본금도 훨씬 많이 들어가서 사장님이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회사였다. 그러나 나는 카스테레오 회사가 직원으로 근무하는 데는 더욱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으나 기술을 배우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며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보증금과 빚밖에 없기 때문에 독립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를 완곡히 사양했다.

 내가 3년 안에 완전하게 기술을 익혀서 독립을 하려면 좀더 단순하면서 설비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전선 가공이 유리하며 전체를 관리하는 방법도 배울 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돌이켜 보면 어렸을 적부터 불우한 생활환경 속에서 익혀온 생활력으로부터 길러진 예지력이라고 생각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님을 여의고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두발을 엄격히 단속하고 있었다. 규율부 주임 선생님은 불시에 두발 검사를 실시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단속 대상이 된 학생들은 머리 중앙에 ‘고속도로’가 뚫렸다.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나이의 중학생에게는 무척 창피한 일이었다. 이에 착안해 학교에서 머리를 깎아 준다면 적발된 아이들이 모두 깎으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신문배달로 번 돈으로 이발기계에 거금을 투자해 ‘사업’을 시작했다.

 다음날 일찍 등교해 교문 옆에서 규율부 주임 선생님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주임 선생님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단속된 친구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이발소에서 200원하는 이발비를 50원에 해주는 나에게 먼저 머리를 깎으려고 야단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첫 사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ㅎ전자에서 3년을 근무하고 50만원의 퇴직금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1990년 새로운 도전의 길로 들어 섰다. 남몰래 밤 늦게까지 기계를 분해 조립해 보았던 기술과 기계 다루는 법, 영업을 통한 납품 업체와의 인간 관계, 자재 루트와 가격 견적, 이것들이 내게 더 없이 소중한 자산이 되어 줄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david@er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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