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융합시대의 IT정책]세계 통신정책 전문가 3인 합동 인터뷰

 전통적인 통신규제 이론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음성과 데이터, 통신과 방송, 유선과 무선을 하나로 묶는 기술과 서비스의 진화에 따른 현상이다. 통·융합 시대의 IT정책은 각 나라 규제기관의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전자신문은 이를 주제로 지난 4일 미국과 유럽의 통신시장 규제정책을 다루는 미연방통신위(FCC) 키란 두워디 선임경제자문관과 피터 스콧 유럽위원회(EC) 통신서비스 정책·규제국장, 그리고 사용자를 대표하는 국제통신사용자그룹 이완 서더랜드 회장을 합동 인터뷰했다. 이들은 이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주최로 열린 ‘통·융합시대 IT정책’ 국제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통·융합 시대를 맞아 규제정책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통신시장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가 종식되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규제정책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피터 스콧(EC)=음성, 데이터, 방송의 네트워크가 IP로 통합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들이 나오면서 새 규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규제정책은 규제당국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정한 경쟁은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유발한다. 또 가격을 인하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에 대해 규제정책은 최대한 단순화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규제는 보편적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키란 두워디(FCC)=미국은 30년전부터 통·융합을 경험해 왔다. 인터넷 관련 정책을 다룰 때 효과적인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플랫폼을 가진 사업자들이 경쟁자들에게 접속을 허용하도록 했다. 시장의 쏠림현상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경쟁을 활성화한 뒤 상황에 따라 규제를 정리하는 방법을 채택해 왔다. 시장이 먼저고 이후 규제를 고민하는 것이 맞다.

 ▲이완 서더랜드(INTUG)=새로운 서비스 등장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규제를 먼저 얘기할 수는 없다. 별도의 입법이 필요치 않은 경우도 많다. 규제기관에게 있어 예측은 금물이다. 기존의 규제들에 유연성을 두면서 현상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도 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경우 문제가 되지만 진입이 자유롭다면 우려할 필요가 없다.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를 규제하고 낮은 분야는 탈규제하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번들링 상품은 소비자의 편익을 증가시키고 요금을 인하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선발사업자와 후발사업자간 격차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 시장선점효과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선발사업자의 번들링을 규제하는 것은 옳은가.

 ▲피터 스콧=규제정책은 장기적 효과와 단기적 효과를 구분해 고려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쟁을 위해 선발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쟁을 저하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입장이 그렇다. 새 서비스의 출시를 막는 것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다.

 ▲이완 서더랜드= 규제는 제조사간, 사업자간, 규제기관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데서 나오는 정치적 게임이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시장과 서비스를 봐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의 경우 2.3㎓를 활용한 새 서비스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자는 새 서비스를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에 규제기관은 이를 위한 뭔가를 해줘야 한다. 새 서비스는 시장을 드라마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사실 있기 때문에 규제기관의 장단기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통신시장 개방이 이슈가 되면서 각국 통신정책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에 대한 규제와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내 통신서비스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도 있다.

 ▲피터 스콧=통신시장 개방은 당연히 맞는 얘기다. EU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바로 WTO에서 논의되는 원칙들이다. 통신자본의 개방은 새로운 경쟁과 새로운 투자를 유발한다. 한국의 경우 공익성에 대한 우려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 그러나 통신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수익성이 없을 경우 진입하지 않는데다 상호개방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각국의 통신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규제의 차이점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피터 스콧= WTO의 원칙은 기본적인 규제다. 대부분의 회원국이 동의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각국의 역사와 환경 차이에 따른 규제정책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유럽보다 2년 이른 96년 통신법을 개정하며 통신시장을 개방했다. 또 컨버전스에 대한 법 개정도 이뤄졌다. 이런 규제를 개정하는 것은 각국이 상황에 맞게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다.

 ▲키란 두워디=96년 통신법 개정이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96년 통신법이 컨버전스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아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섹션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의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지난 월요일 포럼을 개최해 FCC 커미셔너, 소비자, 기업 등의 의견을 나눴다.

 ▲이완 서더랜드= 규제는 정치적 현실이다. 각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것 아닌가. 각국이 통신산업을 어떻게 보는가, 의지와 실천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 중동국가의 경우 전용회선 요금이 너무 높은 문제가 있어 개선을 건의했으나 결국 입법에 실패했다.

 ―한국의 경우 장기적인 과제로 주파수경매제를 논의하고 있다. 주파수 할당에 시장경제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3G주파수의 경매에 사업자들이 많은 돈을 들여 3G 투자와 상용화가 늦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분석이 있다. 이를 보면 제도를 개선하고 시장논리를 적용한 것이 오히려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이완 서더랜드=그 문제는 빛보다 열이 더 많이 나는 문제다. 거론하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3G는 사업자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업권을 따려했었다. 기업의 주가와도 관계가 있었다. 미친듯이 돈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사실상 서비스가 늦춰지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3G사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음성 서비스 수요만 있어 수익성이 없었다. 소비자의 요구가 없는 게 이 문제의 본질이다.

 ▲피터 스콧= 경매제와 규제완화는 별개로 봐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존의 주파수 할당방식을 유지하는 국가도 많다. 3G의 지체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이다. 수요가 없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꺼리는 것이다. 2G에서 3G로 급격히 전환하는 것만이 대안은 아니다.

 ―미국 FCC는 IP텔레포니(인터넷전화)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통신서비스가 IP로 통합되면서 여러가지 규제 이슈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키란 두워디=정책변화에 대한 FCC의 공식입장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98년 FCC의 의회 보고에서 FCC는 IP텔레포니를 통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공식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칙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서는 기존의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 서비스가 기존의 서비스와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것이 좋다.

 ▲피터 스콧= IP텔레포니에 대한 규제는 PC 등을 통해 소비자에까지 직접 연결되는 서비스와 백본에서의 IP텔레포니 두가지로 나눠 각자 다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브로드밴드 발전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통·융합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제도가 정비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 규제기관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해결과제다. 조언을 부탁한다.

 ▲피터 스콧=한국에 대해 직접 조언하기는 어렵다. 유럽의 접근방식은 콘텐츠와 인프라의 규제가 서로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프라가 서로 통합되면서 규제도 하나의 그룹으로 묶여야 한다.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별도로 다뤄져야 한다.

 ▲이완 서더랜드= 너무 성급한 제도정비는 좋지 않다. 기술 변화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기술변화에 매우 잘 대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빠른 법제화는 나쁜 법을 낳는다.

 ▲피터 스콧= 그러나 인프라 투자자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투명성과 명확성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법제화는 적절히 이뤄져야 한다.

 ▲키란 두워디=시장은 급변한다. 법은 20년을 내다봐야 한다. 3년을 전제로 한 입법은 의미가 없다. 제도가 없는데도 투자가 진행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제도가 없어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피터 스콧(55)은 유럽위원회(EC)의 정보사회이사회에서 통신서비스 분야의 규제정책을 담당하는 정책·규제국 국장을 맡고 있다. 유럽연합(EU)내 독립기구인 EC 이사회에서 결정된 정책은 모든 EU국가에 적용된다.  

 ◇키란 두워디(51)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국제국 선임 경제자문관은 전략적 분석과 협상 분야의 전문가다. 현재 보편적서비스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미디어 이슈와 통신사업자 관련 업무도 담당했다. 그는 워싱턴주립대 농경제학 박사로 FCC 재직 전인 94년까지 백악관 예산운영국에서 일해왔다.

 ◇이완 서더랜드(48)는 브뤼셀에 본부가 있는 국제통신사용자그룹(INTUG: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sers Group)의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영국 웨일즈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웨스트미니스터대, 월버햄튼대 교수로 재직하며 통신과 정보기술 이용 정책과 전략을 강의했다. INTUG는 통신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기구로 통신규제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ITU, OECD, 각국의 규제기구, 통신콘퍼런스 등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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