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개인별로 통보됐지만 수능의 여운은 예전과 달리 매우 긴 듯하다. 출제위원 선정, 정답시비 등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떠들썩했다. 그 중에서도 정답 시비는 사상 처음으로 복수정답 인정이라는 결과를 낳으면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수험생들이 집단행동에다 행정소송까지 내는 등 파급이 확산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입시에서는 1, 2점 차로도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 요즘 관심을 갖는 것은 ‘이공계 기피’ 문제다. 수험생들의 대학 학과선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더하다. 부와 명예를 잡을 수 있는 특정 분야 학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지만 공부하기 힘든 이공계에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대학들은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으기 위해 실시하는 입학설명회에서 이공계 분야의 장점을 내세우기도 하고 공대·자연대 등 이공계 분야만 따로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같이 참석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낮다는 반증이다. 오죽했으면 전국 물리학과 교수들이 기초과학이 무너지고 진다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이공계 학장들은 이공계가 벼랑 끝에 몰렸다며 대통령에게 건의문까지 냈겠는가.
이같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어제 오늘 벌어진 것은 아니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IMF체제가 막 끝나던 3년전부터라 할 수 있다. 선진국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겪고 있는 현상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유달리 강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지금까지 선보인 특별대책만해도 이공계 연구인력에 대한 병역특혜 부활, 이공계 출신 공직진출 확대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느닷없이 ‘이공계 기피 과장’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것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 공개행사에서 이공계 기피가 언론보도처럼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해 제기된 것이다. 물론 그의 지적처럼 언론이 이공계 기피문제를 들먹일수록 학생과 부모들이 ‘이공계는 정말 가지 않는구나’ 하는 인식이 박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북적이는 음식점에는 계속 사람이 몰리지만 일단 파리를 날리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나면 좀처럼 파리채를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썰렁한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러나 고교졸업생의 이공계 지원자수가 불과 수 년전 38만명에서 19만명으로 절반정도 감소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또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의대에 지원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공계만 중요한게 아니지만 그만큼 이공계의 우수인력이 줄고 있는 것이어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올해 수능에서 서울대 공대생이 의대로 가려고 한의대 친구에게 대리시험을 치게 했다가 들통난 일은 이공계 기피현상의 한 단면이다.
정부가 엊그제 또 이공계 기피 완화대책을 발표했다. 이공계 대학장학금 확대 등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50% 늘린다는 것이 골자다. 눈에 띄는 것은 우수 연구원들의 정년을 보장해주고 정년 후에도 연구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 ‘영년직 원구원제’ ‘정년후 계약연장제’의 도입이다. 이것이 과학기술인들의 행복지수를 올려놓고 수험샘들의 이공계 지원을 불러일으킬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길 기대한다. 이공계 일자리가 장래성이 있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이라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사라질 것으로 본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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