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유료방송시장은 외형적인 수치로만 보면 국제적 수준이다. 1640만 전체 가구수 중 케이블TV가입 가구수가 1000만을 넘어섰고, 작년 3월 출범한 위성방송의 가입자수가 2년도 채 안돼 100만을 넘어섰다. 전국민의 약 70%가 유료TV방송을 접한다는 것은 결코 낮은 비율이 아니다.
하지만 유료방송시장의 속사정은 그 외연에 비해 장밋빛은 아니다. 전국에 산재한 118개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중 일부SO들은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나, 대부분은 복수 SO, 위성방송과의 과당경쟁 및 저가 유료방송의 만연,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의 끝없는 갈등, 인터넷사업으로 인한 통신업체들과의 새로운 분쟁, 갈피를 잡지 못하는 디지털방송 준비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다. PP들도 일부 MPP를 제외하고는 SO에의 진입과 잔류문제, 수신료 배당문제 등 그야말로 생존하기 바쁜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위성방송사업자도 단기간 내에 100만 가입자를 달성했다고는 하나 적자구조는 심화되고 후발주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지뢰밭 같은 난관은 도처에 깔려 있는 형편이다.
방송시장은 하나의 커다란 가치사슬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유료방송시장 플랫폼사업자의 수익악화는 각 플랫폼사업자들이 PP들에게 지불하는 프로그램 사용료에 곧바로 영향을 끼치고, PP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PP들은 양질의 프로그램 제작은커녕 저가 편성·저질 외산 프로그램편성에 급급하게 된다.
현재 케이블과 위성을 통해 내보내고 있는 대부분의 PP들이 국내 제작프로그램 의무편성비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다.
결국 PP들이 자체역량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플랫폼사업자의 수익구조 악화와 함께 방송장비업계 및 SI업계의 타격으로 이어져 공멸을 향해 달리는 악순환 궤도열차를 방불케 한다. 이치가 이러한데도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전방면에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여념이 없다. ‘저가수신료정책’이 양쪽 모두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는데도 막무가내로 추진되는 것은 대표적 사례다.
요즘 방송·통신간 융합으로 양방향TV(ITV)가 등장하고 있다. 케이블TV방송업자는 본격적인 ‘인터넷+CATV’ 번들상품 판매에 나서고 있어 기존 통신사업자와의 사이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통신사업자들도 뒤질세라 xDSL망을 통한 ‘인터넷 +위성비주얼’ 번들상품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데이터방송, VOD방송도 곧 위성과 케이블의 대격전장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경쟁구조의 양상도 더욱 복잡다단해질 것이다.
더 이상 공멸의 시나리오를 써서는 안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케이블TV사업자와 위성방송사업자가 시장의 파이를 키워 ‘윈·윈’하겠다는 전략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선 양측의 대표성 있는 사람들이 만나 실현 가능한 일부터 협의를 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자. 이를테면 양방간에 제기된 법정소송을 모두 취하하는 것도 신뢰구축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유료방송시장의 요금합리화 문제를 이슈화해야 한다. 기존의 케이블TV와 위성방송 간 과당경쟁으로 인한 덤핑식 요금체계는 플랫폼사업자, PP, 소비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청자는 값싸고 질 낮은 콘텐츠보다 비싸더라도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원한다. 맞춤형 방송시대에 적합한 차별화된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합당한 대가를 요구한다면 누구나 동의하면서 악순환의 요금체계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관문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양측간에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공동주택 진입문제(SMATV)나 ‘인터넷+비주얼’ 번들상품 문제, 위성과 케이블의 SCN서비스 문제 등 각종현안에 대해서도 폭 넓게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충분히 가능하다. 경쟁이 불가피한 문제는 공정한 경쟁의 룰을 세워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나간다면 상생공영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일로서, 의미가 크고 값진 일로 평가 받기에 족할 것이다.
◆ 유세준 한국뉴미디어방송협회 회장 knba11@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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