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전자금융거래법 쟁점

 ‘원안 통과냐, 금융계 요구 수용이냐’ 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의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안에 대한 금융업계의 수정보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크게 확산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에 대한 법률적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전자금융거래법안을 입법예고하고 지난 10월 국회에 법률안을 상정한 바 있다. 이 법안은 금융사고시 책임소재, 전자금융업 등록 요건, 소비자 구제제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자금융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는 것은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로 일본의 대표적인 금융연구기관인 금융연수센터에서도 이 법률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발간할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금융계와 IT업계에서도 전자금융거래법의 제정으로 국내의 금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법률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계는 이 법안이 지나치게 금융기관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으며 비금융기관의 전자금융서비스 진출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일부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 제정 배경=법안은 금융거래에 있어 전자적 위변조나 전산장애에 따른 손실이나 손해의 배상에 대한 책임이 불명확해 소비자구제에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전자금융업 수행기관에 대한 감독장치가 미비한 상태이므로 이를 입법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전자금융거래 관련 규제는 현재 민·상법과 은행법 등에 의해 적용되고 있으나 최근 급격히 전자화되고 있는 지급결제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법률이 없다. 게다가 통신과 금융의 융합에 따라 통신회사 등이 전자지급결제분야에 진출하고 금융기관 역시 IT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사이버지점 관리 등에 나서는 사례가 늘면서 이를 규제할 법률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관련 법체계도 전자거래기본법, 전자서명법,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각종 법령 및 약관에 분산되어 있어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주요 골자=전자금융거래 이용자의 신원확인에 필요한 비밀번호 등 접근장치는 이용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만 본인확인을 거쳐 발급토록 했다. 또 비밀번호 등 접근장치의 위변조 또는 거래지시의 전자적 전송·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한 이용자의 손해는 원칙적으로 금융기관 및 전자금융업자가 책임을 부담하도록 했다. 금융기관·전자금융업자 및 전자금융보조업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정하는 안전성 기준을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전자금융 거래기록을 5년간 보존토록 했다.

 전자화폐의 발행 및 관리업무를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금융감독위원회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전자자금이체 또는 전자지급결제 대행업무를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토록 규정했다. 다만 은행 및 금융기관은 전자금융업무가 고유업무에 해당하므로 허가·등록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전자금융업무의 일부를 대행하거나 보조하는 전자금융보조업자를 구분해 별도의 등록을 의무화하지 않고 금융기관·전자금융업자가 보조업자와 약정체결시 금감위에 보고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계의 반발=정부안에 금융계가 크게 반발하는 것은 비금융기관이 전자화폐의 발행 및 관리업무와 전자자금이체·전자지급을 영위할 경우 금감원의 허가를 받거나 등록하도록 한 조항 때문이다. 금융계는 특히 이 조항이 비금융기관의 금융업 진출을 공인하는 의미가 있으며 종전에 금융기관만이 수행하던 지급결제업무의 근본체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안대로라면 여수신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영역에 있어 통신회사의 휴대폰 결제나 일반사업자에 의한 전자화폐 발행과 전자자금이체 등을 통해 비 금융기관이 금융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주장이다.

 금융계는 특히 아직 외국에서도 비금융 기관에 대해 전자화폐 발행이나 전자지급결제를 허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같은 업무는 당분간 금융기관에 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용자의 고의과실에 의해 전자금융거래시에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금융기관측에서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조항도 지나치게 소비자 보호에 치우친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계는 전자금융거래가 아닌 대면거래의 경우에는 은행이 본인확인의무를 이행하면 금융사고로부터 면책되는 것과도 형평이 맞지 않다며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망=정부가 제출한 전자금융거래법안은 현재 재경위 법률심사소위에 계류중이다. 그러나 산적한 현안이 많아 본격적인 법률검토가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회 재경위 위원들 사이에서도 금융계의 주장대로 법률안의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의 신규설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방향이나 우리나라 금융발전단계를 감안할 때 전자화폐 발행자격이나 지불결제 자격확대는 지나치게 앞선 입법이라고 보고 있어 해당조항은 수정 또는 폐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재경부 등 일각에서는 첨단 정보기술 보유 기업이나 비금융기관의 참여가 필수적이므로 전자금융거래법에서 이들에게 일부 금융업 참여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 IT업계 입장 - "통신+금융 추세 인정을"

 전자금융거래법의 제정을 통해 전자금융업무의 법적 허용을 기대해온 통신회사 등은 이번 논란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관과 제휴한 카드결제서비스인 ‘모네타’와 변형된 형태의 자금이체 서비스인 ‘네모’를 통해 금융업 진출을 모색해온 SK텔레콤은 비금융업자의 전자화폐 등 금융업무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자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과거 모네타와 네모 서비스를 실시하며 금융권과 갈등을 빚었던 전례가 있어 법안의 수정에 대해서는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IT업계는 금융산업에서 정보기술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보통신업체들의 특정 금융산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금융산업 효율성 개선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속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우리나라 전자금융산업 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고 휴대폰 소액결제와 같은 일부 서비스는 세계 첨단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발전된 산업이 적절하지 못한 규제로 경쟁력을 잃는다면 국가적인 손실이라는 게 IT업계의 주장이다.

 금융업의 국경이 사라져가며 통신과 금융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실정을 고려할 때 이러한 추세와 일치하지 않은 규제를 제정, 집행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IT업체들은 전자금융거래법의 통과를 통해 금융기관과 전자금융업체 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바라고 있다.

 기존의 금융기관들은 전자금융사업자를 금융산업의 파트너로 인정해줘야 전자금융산업의 활성화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자지불결제대행(PG)사 등은 전자지불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법과 규정체계의 미비로 인하여 하나의 중요한 산업군의 주체로서 인정 받지 못해온 점을 지적하고 전자금융거래법의 제정으로 새로운 법적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전자지불업계 한 관계자는“전자지불업체를 종속적인 가맹점의 하나로만 볼 경우에는 전자지불산업이 절대 발전할 수 없다”며 “파트너로서 서로간의 역할분담과 수익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며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 금융계 입장 - "e금융업체 난립 막아야"

 금융권에서는 전자금융거래법의 제정에 대한 취지나 당위성에 대해서 모든 은행권이 공감하고 있고 또 조속한 시일내에 동법이 제정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법의 시행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와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전자금융 이용자의 고의, 과실에 의한 사고일지라도 금융기관이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이 사고금액을 전적으로 변상한다는 조항은 이용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조항으로 인해 이용자의 접근장치 관리소홀 및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전자금융거래 약관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은행이 거래지시에 포함된 계좌번호, 비밀번호, 이용자번호 등이 은행에 신고된 것과 같음을 확인하고 거래지시의 내용대로 금융거래를 처리한 경우 면책이 되듯이 법안에서도 은행이 이러한 과정을 준수했다면 면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전자금융거래와 관련해 전자금융보조업자의 고의, 과실은 금융기관 및 전자금융업자의 고의, 과실로 본다는 조항은 전자금융보조업자의 고의, 과실에 대한 배상책임이 금융기관에 전가됨에 따른 리스크 증가로 금융기관은 손해 변제능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IT업체와는 계약체결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금융기관의 전자금융업을 허용하는 듯한 모호한 조항에 대해서도 금융계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대규 한미은행 인터넷뱅킹부장은 “전자금융업의 핵심은 비금융기관의 지급결제기능 진출 공식화 및 전자화폐 발행업무 취급에 있는데 이는 국가 금융제도나 지급결제제도 개편을 의미한다”며 “비금융기관도 간단한 요건만으로 전자금융업에 나설 수 있을 경우 난립으로 오히려 고객들이 전자금융 사용에 불안감을 느끼고 활성화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이처럼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에 대해 금융계에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정부안대로 확정될 겨우 당초 입법취지와 달리 전자금융업무의 위축과 거래비용 증가, 무분별한 전자금융업자의 난립으로 인한 금융시장 교란 및 대형 금융사고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금융계는 지적한다.

 ◆ 기고 - 정부안 수정해야

강대규 한미은행 인터넷뱅킹부장 digital@goodbank.com

 전자금융거래법의 제정에 대한 취지나 당위성에 대해서 모든 은행권이 공감하고 있고 또 조속한 시일내에 동법이 제정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법의 시행에 따라 향후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와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전자금융 이용자의 고의, 과실에 의한 사고일지라도 금융기관이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이 사고금액을 전적으로 변상한다는 조항은 이용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조항으로 인해 이용자의 접근장치 관리소홀 및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기존 전자금융거래 약관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은행이 거래지시에 포함된 계좌번호, 비밀번호, 이용자번호 등이 은행에 신고된 것과 같음을 확인하고 거래지시의 내용대로 전자금융거래를 처리한 경우에는 면책되어야 한다. 또 전자금융거래와 관련해 전자금융보조업자의 고의, 과실은 금융기관 및 전자금융업자의 고의, 과실로 본다는 조항은 전자금융보조업자의 고의, 과실에 대한 배상책임이 금융기관에 전가됨에 따른 리스크 증가로 금융기관은 손해 변제능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IT업체와는 계약체결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이로 인한 중소 벤처기업의 도산이 예상된다.

 비금융기관의 전자금융업을 허용하는 듯한 모호한 조항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전자금융업의 핵심은 비금융기관의 지급결제기능 진출 공식화 및 전자화폐 발행업무 취급에 있는데 이는 국가 금융제도나 지급결제제도 개편을 의미한다. 비금융기관도 간단한 요건만으로 전자금융업에 나설 수 있을 경우 난립으로 오히려 고객들이 전자금융 사용에 불안감을 느끼고 활성화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

 비금융기관에 전자화폐 및 자금이체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국가경제적으로 상당한 파장과 폐해가 예상되는 바 이 업무는 금융기관에만 허용하고 현재 법적 토대 없이 비금융기관이 이미 진출한 전자화폐 및 자금이체 업무 등 유사 전자금융업무는 본 법안의 수정 또는 다른 법안을 제정해 제재 및 관리·감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에 대해서는 은행에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법안대로 확정될 경우 당초 입법취지와 달리 전자금융업무의 위축과 거래비용 증가, 무분별한 전자금융업자의 난립으로 인한 금융시장 교란 및 대형 금융사고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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