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킬빌

 ‘킬빌’은 원래 3시간 분량이다. 6개월 시차를 두고 1, 2편으로 나뉘어 개봉한다. 핵심사건은 5년 전의 결혼식 참사다. 임신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려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머 분)는 같은 조직 보스인 빌에 의해 무참히 습격당한다. 결혼식장 바닥에 흥건하게 쌓인 탄피가 끔찍한 참사를 설명해준다. 피로 물든 결혼식 대참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은 더 브라이드 뿐이다.

 침대에서 5년간 코마 상태로 지내던 더 브라이드가 자신을 성폭행한 병원 직원을 살해하는 장면부터 우리는 타렌티노의 엽기성을 목격할 수 있다. 대낮 주택가, 버니타 그린의 비좁은 가정집 주방에서 벌어지는 혈투만 봐도 타렌티노 미학의 정수를 알 수 있다. 그는 비좁은 부엌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액션의 쾌감도를 상승시킨다. 극단적인 로우/하이 앵글의 대비, 상대의 정수리를 향하여 날아가는 칼의 빠른 속도감과 그 이후의 정적, 이런 카메라 앵글의 조화와 리듬의 완급 조절은, 타렌티노 액션의 숨가쁜 속도감과 미학적 질서를 보여준다.

 5명의 리스트에서 한 명을 삭제한 더 브라이드는, 오키나와로 가서 검의 명인 하토리 한조(소니 치바 분)에게서 검술 훈련을 받는다. 야쿠자 조직 보스로 변신한 오렌 이시와의 대결을 앞두고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더 브라이드의 검술 스승으로 등장하는 하토리 한조는 일본 사무라이 액션의 대가 소니 치바가 맡고 있다. 그는 ‘킬빌’의 후반부 사무라이 검법 액션의 무술 안무까지 책임지면서, 전체 무술 감독인 원화평의 홍콩 와이어 액션과 조화를 이룬다.

 오렌 이시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킬빌’ 1부 후반부의 핏빛 액션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왜 사람들이 타렌티노를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고 불렀는지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화면 가득 낭자하게 피가 흐른다. 댕강, 댕강, 댕강 1백여명 야쿠자 조직원들의 머리가 잘려나가고 팔이 잘려지고 발목이 잘려진다. 신체의 각 부분이 더 브라이드의 예리한 검에 의해 잘려나간 뒤에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고 폭포처럼 쏟아진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일부는 흑백 톤으로 보여지지만 그러나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흥건한 피를 화면 가득 쏟아붓고 있다.

 지난 49년 세워진 중국 ‘베이징 영화 스튜디오’ 내에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된 ‘청엽정(House of Blue Leaves)’ 장면은 오헤이 타나다와 데이비드 와스코의 디자인팀이 설계한 건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디자인 된 나이트클럽 ‘청엽정’은 마치 홍콩 액션 영화의 주막신을 보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 중앙의 넓은 홀,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넓은 계단, 중앙 홀을 둘러싼 사각형의 2층 난간 등은 홍콩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구조를 갖고 있다. 홀의 투명한 아크릴 바닥 밑으로는, 일정한 방향으로 다듬어진 모래 위에 큰 돌 몇 개가 설치된 일본식 정원이 보인다. 다다미 홀에서는 맨발로 기모노를 입은 여성 밴드가 록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런 기묘한 풍경은 특히 서구인들의 동양 취미를 만족시켜줄 것이다.

 타렌티노는 ‘킬빌’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일본 사무라이 영화(더 브라이드와 야쿠자들간의 혈투에는 ‘사무라이 픽션’의 유명한 실루엣 장면이 패러디돼 있다), 홍콩 액션 영화(더 브라이드의 노란색 트레이닝복은 그 자체로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다. 이외 ‘청엽정’ 신은 장철이나 호금전같은 홍콩 무술영화 절정기의 작품들의 흔적이 배어 있다), 이탈리아의 마카로니 웨스턴 등등 다양한 국가, 다양한 문화가 혼합돼 있다. 포스트 모던 영화의 대표 전시물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