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녹음실의 한 엔지니어와 사석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가 근무하는 스튜디오는 많은 스타들이 음반을 녹음하는 곳인 관계로, 그는 녹음할 때 가수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한 그룹을 녹음할 때였죠. 정말 노래를 못하더라구요. 나도 그만큼은 불러요. 내가 부스에 들어가고 싶었다니까요. 저도 그들의 음반을 들었을 때는 잘하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하긴 했는데, 정말 (그 그룹은) 녹음기술의 개가라니까요.”
그의 입에서는 그들 말고도 노래 못하는 가수들의 명단이 술술 나왔다. "제가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데, 이건 정도가 심해요. 록 밴드도 그래요. TV에 나오는 인기가수야 그렇다지만, 밴드가 못하면 누가 그 공연을 보러가겠습니까.”
그는 음반에서 들을 때와 실제로 라이브 공연에 갔을 때 차이가 나는 경우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녹음하면서는 많은 기술적인 덧칠이 가해져요. 요즘은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그동안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한 쪽으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례로 오토 튜닝(auto-tuning)이란 것이 있죠. 그건 설령 가수들이 음정이 약간 틀려도 자동적으로 조정해주는 기능이에요. 축복의 기술이죠.”
오토 튜닝만이 아니었다. 가수들의 실제 가창력을 보완(?)해줄 수 있는 획기적 장치는 얼마든지 있었다. 있는 것을 잘 포장하는 게 아니라 없는 것을 꾸며내는 것이므로 그것은 사실상 `사기`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야 말할 수 없죠”라고 답했다.
“그럼 (노래 못하는) 가수들이 밉겠네요.”
“아뇨. 반대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못하는 것을 잘 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장치를 동원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나도 몰랐던 기술과 방법을 많이 알게 되니까 엔지니어로서는 좋죠. 우리의 실력을 향상시켜주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가수 임재범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정말 노래를 잘 하더라구요. 다른 것은 몰라도 녹음실에 와서 노래하는 순간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무엇보다 필(느낌)을 살려서 노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의 노래가 감동을 주는 거죠.”
그는 가수라면 먼저 자기가 불러야 할 가사를 충분히 외고 의미를 해석해서 녹음실에 와야 할 것을 당부했다. “좀 했다는 가수들도 바빠서 그런 건지, 가사를 외워 오지 않아요. 그러니 어떤 느낌으로 불러야 할지 알겠어요. 분명히 가사는 구슬픈 느낌인데 노래는 전혀 슬픈 맛이 없는 거예요. 그럼 어떡합니까. 기술적으로 음색을 약간이라도 변형시켜야죠.”
그는 음반불황의 원인으로 우리의 음악이 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는 데서 찾았다. “아무리 녹음실에서 잘해봐야 근본적으로 나쁜 소스(재료)는 나쁜 겁니다. 좋은 가수가 별로 없는데 게다가 가리고, 덮고, 고치고 한 음반이 태반이니 음반이 많이 팔릴 리가 없죠. 저도 음반 녹음해서 먹고삽니다만 이래가지고 음반은 끝입니다!”
그는 음악계의 흐름이 라이브로 옮겨가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지만 그렇다고 음반이 죽으면 안된다고 역설했다. “좋은 음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노래 잘하고 연주 좋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음반이요. 기본으로 가야 돼요. 그래야 살아요!”
임진모(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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