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든, 신문을 보든, 인터넷에서 서핑을 하든 요즘 우리들이 흔하게 듣게 되는 주문과 같은 단어가 있다. ‘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지역적·이념적·정서적으로 분열된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고 여야 할 것 없이 국민통합을 외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오랫동안 고수하고 있던 공산주의라고 하는 경제체제에서 그들이 ‘악’이라고 규정하고 붕괴될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비웃었던 자본주의의 요소들을 하나, 둘씩 통합해 가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세계적으로는 지금까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집안 살림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던 나라들에 좋든 싫든 지구가 하나로 통합된다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닫혀 있던 울타리를 활짝 열어 젖혀야만 한다고 하는 논리의 근간이 되는 소위 세계화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다.
이렇듯 각각 분리돼 존재하던 사람, 지역, 철학, 이념 등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됐거나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이제 현실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증명하는 일들이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디지털 컨버전스라고 불리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냉장고가 컴퓨터를 끌어안아 한 몸이 됐고, TV가 컴퓨터와 합쳐지고, CD플레이어와 MP3 플레이어는 하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가전제품끼리 하나로 통합하는 현상은 이제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고 최근에는 전혀 다른 제품끼리 합쳐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디지털 통합(혹은 융합)의 중심에서 여러 가지 기기의 기능을 흡수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흡수의 대상을 넓혀갈 주인공으로 주저없이 휴대전화를 꼽는다.
이미 휴대전화는 음성통화라는 단순한 전화기의 기능 이외에도, 디지털 카메라·캠코더·TV· PDA·MP3 플레이어·신용카드 등 심지어는 가정용 리모컨의 기능들까지 집어 삼키고 무서운 기세로 쉴 새 없이 다음 먹잇감을 노리며 입을 벌리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1999년에 무선인터넷 서비스라는 업종에 뛰어들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앞으로는 휴대전화가 인터넷이라는 PC만의 독점적인 영역을 흡수(혹은 통합)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믿음은 현실로 드러났고,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우리회사는 과연 휴대전화가 앞으로 흡수할 기능은 무엇일까를 예측하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합 즉, 덧셈이 화두인 시대에도 분리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시장에서 이러한 유무형의 디지털 상품들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다. 특히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첨병이라고 불리는 첨단 기기와 그것을 채우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는 집단으로 소위 ‘어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고 불리는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다.
이러한 소비자들을 전체 시장에서 가려내는 것, 즉 분리하는 것이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이론 중의 하나인 시장 세분화(market segmentation)가 아니던가. 요즘 들어 고객관계관리(CRM)란 이름으로 고객의 정보를 통합해 일정 기준별로 분리하는 것이 경쟁력으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이 어떻게 통합될 것인가를 미리 내다보는 통찰력과 누구를 어떻게 분리하느냐라는 분석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씹어 보게 된다.
◆성규영 에어아이 대표이사 gysung@ai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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