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BMT(벤치마크테스트) 소화하기?

수요처 객관적인 구매 기준 불구 구현 비용 수십억원 공급자 부담

 IT시스템 구입시 사전 성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테스트(BMT)가 도마 위에 올랐다.

 BMT는 수요처에서 시스템을 구입하기 전 자사가 원하는 핵심 기능이 구현되는지를 사전에 평가하는 작업. 따라서 좀 크다 싶은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당연히 거치는 절차로 인식돼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야 실제 기능과 성능을 ‘추정’하는 일정 규모에서 테스트를 하는 작업이고, 여기서 확인된 성능 조차 현업에 작용할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는 만큼 BMT는 시스템 구매에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BMT 소요 비용은 전적으로 해당 기업의 부담이라 프로젝트에 진 기업의 경우 적지않은 타격으로 남기도 해 공급업체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실제 BMT를 앞두고 있는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2호기 도입 프로젝트의 경우 기업당 최소한 200만 달러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떨어질 경우 고스란히 비용을 공급업체가 안고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BMT 잘못 하면 회사 문 닫는다?=기상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98년 슈퍼컴퓨터 1호기를 도입할 때 개별 기업이 BMT를 위해 부담한 비용은 어림잡아 100만달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전체 프로젝트 규모가 1800만달러였으니 5%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국내 최대 IT 프로젝트로 주목받은 KT의 ICIS 프로젝트는 더욱 심하다. 당시 프로젝트는 2000억원이 넘는 초유의 프로젝트로 BMT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지 미뤄 짐작할 만하다.

 당시 기상청 프로젝트에서 탈락한 다국적 서버업체 A사가 BMT 비용을 그해 매출에서 보상하기 위해 고생한 것은 업계에 알려진 사실. KT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한 다국적 소프트웨어 업체 B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사를 철수했다.

 BMT 비용과 지사 철수를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수백만달러 비용은 매출에서나 특히 이익 측면에서 쉽게 올릴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본사에서는 향후 지사를 몇년 운영해도 그 비용을 되찾을 가망이 없을 경우 지사철수라는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BMT를 만만하게 보면 회사가 망할 수 있다”고 토로한다.

 ◇BMT 하면 뭐해, ‘가장 유리한 조건’이 있는데=공급업체들이 BMT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BMT 결과가 결코 프로젝트 수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수요처가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최소한 복수 업체를 통과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락한 업체는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공식 이의제기를 꺼리지만 BMT에서 조건이 바뀌는 ‘조율’은 일상적인 일이다.

 여기다 BMT를 뛰어넘는 구매 조건은 공급업체를 더욱 황당하게 한다. 기상청도 여러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기상청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KT 역시 ‘전략구매’라는 표현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급업체로서는 탈락을 각오하고 치르는 값비싼 BMT를 거쳤음에도 궁극적으로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수요처의 자의적 판단이 결국 프로젝트를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 합리적인 구매가 수요처를 당당하게 한다=BMT에 관련된 논란은 한두 해 일이 아니지만 결국 국내 기업들의 구매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개선될 여지가 없다. 이미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BMT 비용을 수요처가 일부 부담할 뿐 아니라, 제안서나 사전 ISP 수립 작업에서도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관행이 정착되는 것이 수요처를 당당하게 하고, 구매를 둘러싼 끊임없는 잡음을 벗어나는 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과도한 비용이 드는 BMT는 국내 기업들에는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수준으로 진행될 필요성도 있다. 적어도 BMT가 끝나고 회사가 흔들리거나, BMT 비용 때문에 아예 성능평가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최근 아태본부로부터 “한국과 같이 IT를 선도하는 국가에서 최소한 제안서 통과 여부가 확인된 후 제품을 주문해 테스트할 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느냐”는 반문을 받았다고 전하는 C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구매 관행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일어날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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