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실랑이도 많이 벌였습니다. 감독님은 제게 ‘코미디를 하지 말라’고 주문했지만 ‘그래도 관객은 코미디를 기대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죠. 하지만 점차 감독님이 옳았다는 판단이 들더군요.”
17일 개봉되는 영화 ‘황산벌’에서 주인공 계백장군 역을 열연한 박중훈은 최근 공식 석상에서 이준익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코미디 대신 핏기 선 눈빛으로 계백의 비극을 연기한 것이 극의 비장함을 높이고, 박중훈 본인으로서도 연기력을 입증받는 계기가 된 때문이다.
그가 만약 박중훈식 코미디로 계백장군을 연기했다면 ‘투캅스’나 ‘마누라 죽이기’의 연장선에서 끝이 났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는 진지하게 시작해서 유머로 끝나는 박중훈식 화법을 선보이지만 과거와 비교해 볼 때 한껏 중후해졌다.
‘황산벌’의 계백장군은 적장에게 목을 베이기 직전에도 “징하게 덥구마잉”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죽음 앞에서도 꺽이지 않는 사나이의 기백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박중훈은 이 영화에서 눈빛만으로도 상황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연기력있는 배우임을 입증했고, ‘연기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영화인생 18년에 접어들면서 그가 선택한 영화 ‘황산벌’은 서기 660년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이 황산벌에서 벌이는 격전을 조명한 퓨전 코믹 역사물. 역사책에 불과 몇 줄로 언급돼 있는 단편적인 사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이 감독에 따르면 ‘역사와 놀아보고 싶어서 만들어진’ 영화다.
박중훈도 “계백이 이름인지, 호인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계백은 패장으로서 그저 맹장이라고만 기록돼 있죠. 하지만 진짜 그랬을까요. 이 영화는 2003년의 시각에서 660년을 조망한 것으로 이 시대에도 인간이 살았고, 인간적인 갈등이 존재했을 것이라는데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영화 ‘황산벌’은 양념으로 노련미와 함께 신선함을 추가했다. 5만5000대군이 날뛰고, 달리고, 싸운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죽고 죽이며 피범벅이 된 무사들, 여기에 가미되는 ‘쪼깨 거시기하네’ ‘계백이 나오라카이’ 등 전라도와 경상도의 리얼한 사투리는 너무 엄숙해질 수 있는 영화의 주제에 가벼운 날개를 달아준다.
사실 박중훈이 영화 ‘황산벌’을 선택한 것은 우리영화가 좋아서다. “할리우드 진출 때문에 바빴지만 우리 관객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더구나 창작예술이 답습과는 상반되는 개념이고 보면, 영화 ‘황산벌’은 창작예술의 전형이었던 셈이죠.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박중훈의 명품 연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11월 차태현과 코미디영화 ‘투 가이스’를 찍은 다음 내년 4월에는 조너선 드미 감독의 ‘비빔밥(가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화 ‘황산벌’에서 호흡을 맞춘 정진영과는 다시 한 번 같은 무대에 서고 싶은 바람도 있다.
할리우드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박중훈에게 이제 한국시장은 좁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영화는 항상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자양분이자, 안식처로 남아있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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