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굿바이 레닌

 볼프강 베커 감독의 ‘굿바이 레닌’은 독일 통일세대에게 바치는 위대한 헌사다. 이 영화는 1989년 10월 7일, 동독 개국 4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열혈 공산당원 알렉스의 어머니가 베를린 장벽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에 합류한 알렉스를 보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후, 8개월 뒤 다시 깨어났다가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개인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가고 있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이념의 소용돌이와 함께 낡은 국가의 붕괴와 새로운 세계의 건설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수많은 대중들의 내면이 섬세하게 삼투되어 있다.

 그 8개월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동독 사회통일당 당수 호네커가 사임하고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었으며, 서독의 콜 수상이 동독을 방문했다. 그러나 알렉스는 다시 깨어난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봐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 TV의 정규 뉴스 대신, 그가 직접 대본을 쓰고 친구와 함께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뉴스를 몰래 비디오로 상영하여 어머니에게는 세상이 여전히 어머니의 굳건한 믿음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렉스의 어머니가 깨어난 1990년 6월은 마침 월드컵이 열리던 기간이었고, 동서독 통합팀은 준결승에서 영국을,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격파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어머니를 위해 지상 최대의 거짓말을 시작한 알렉스는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동네를 산책할 수 있게 되자 거짓말의 강도를 점점 높여 간다. 서독 사람들이 주위에 보이고 대형건물에 코카콜라 광고판이 걸리게 되는 것도 모두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 동독을 흠모하여 망명오는 서독인들이 늘어나서이고, 동독의 경제가 발전해서다.

죽을 때까지 알렉스의 어머니는 위대한 독일 사회주의 국가가 더욱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 믿음을 무너뜨리기 싫어서, 어머니의 평생 신념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알렉스는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들은 자꾸 새끼를 낳는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거짓말들을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도 되지만 알렉스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그 모든 거짓말들을 솜씨있게 마무리한다.

 ‘굿바이 레닌’은 한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이념이 붕괴되는 시대를 관통하면서 진실과 거짓, 개인과 세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항들을 거대한 용광로처럼 녹여내고 있다. 철거된 레닌의 동상이 밧줄에 묶여 헬리콥터로 운송되는 장면은 마치 ‘율리시즈의 초상’에서 운하를 흐르는 배의 갑판에 놓여 있는 거대한 레닌의 동상을 생각나게 만든다.

 왜 이 영화에 650만 독일 시민이 열광했는지를, 독일영화제 작품상·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을 수상하고 올해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유럽영화상을 받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굿바이 레닌’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씻김굿이다. 통독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힘겨루기라는 독일 외적 상황으로 수없이 상처받은 독일 민족의 영혼을 씻겨주는 것이다.

 ‘굿바이 레닌’은 그런 주제를, 이념을 전면에 내세워 제작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족사로 시야를 좁혀서 그러나 더 울림있게 제작했기 때문에 수많은 대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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