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IT 부활하나](하)속단은 이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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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열도가 추분휴일이었던 23일. 영국 런던에서 비보가 한 통 전해졌다. 한때 엔·달러 환율이 110엔의 초강세를 보인 것. 이는 지난 2년 9개월간 보여준 최악의 엔고 상황이었다. 일본은행의 후시이 도시히코 총재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급속한 환율 변동에 따른 충격이 금융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향후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석한 미조구치 재무관은 이를 직접화법으로 바꿔 “언제라도 필요하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러화 대비 엔화의 가치가 높아지는 엔고는 일본 경제에 치명적이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여전히 수출 위주의 경제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회복세도 결국은 수출 호조에 따른 것이다. 일례로 올해 최고의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캐논이 순이익 전망치를 낼 때 기준 환율은 달러당 118엔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115엔∼120엔 사이에서 전략을 짰으며 이를 아는 일본 정부도 115엔을 심리적 저지선으로 잡아왔다.

 런던에서 전해진 비보는 불황보다 견디기 힘든 ‘엔고의 악몽’이 바로 옆에 있음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주식시장도 마음놓을 여유가 없다. 닛케이평균지수는 4월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왔다. 그러나 주가 상승은 외국인의 자금 유입에 전적으로 의지해왔다. 4월부터 9월 두번째주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은 5조7600억엔(57조6000억원)을 순매입했다. 이는 일본 주식시장 역사에서 최단기간동안 최대의 외국자본이 유입된 사례로 꼽힌다. 영국계 버클레이즈글로벌인베스트먼트의 리처드 그리놀드 펀드메니저는 “(외국인 매입세력은) 장기적인 투자라기보다 축소됐던 일본 주식 보유 비중을 늘리기 위한 움직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일부 유입됐을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미국 증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일본 증시의 특성도 아킬레스 건이다. 미국 증시가 추락할 경우 외국 투자자들은 미국에서 본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일본 주식을 팔 확률이 높다. 이래서야 일본 경제의 부활 운운도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 업체들이 엔고 위협과 주식의 불확실성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한지 여부가 부활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LCD TV, 홈네트워크가전을 비롯한 차세대 전자기기 시장에선 한국 등과 승부를 벌여야 한다. 80년대처럼 독야청청하며 시장을 휩쓸며 돈을 벌기도 쉽지않아 보인다. 또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디플레이션도 지뢰다. 아무리 구조조정을 통해 내부의 힘을 강화시켰어도 디플레이션이 지속돼 매출이 늘지 않으면 그 뿐이다. 단순한 버티기에 불과한 셈이다. 수익의 본격적인 회복에는 매출 증가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현 상황이 90년대초 미국 경제와 닮았다고 얘기한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인원을 정리해 내부의 힘을 키운후 결국 호황을 이끌어냈다. 현재의 일본 기업들의 상황은 일자리없는 회복, 즉 ‘잡리스 리커버리(jobless recovery)’로 불리웠던 미국 기업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21세기 성장동력으로 일본이 다시 부상할지 세계 경제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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