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획-통신시장구조조정]격동기 맞은 통신산업 구조조정

 ‘시장이 있는 곳에 경쟁이 있다. 경쟁은 구조조정을 동반한다. 고로 시장에서 구조조정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최근 후발 통신사업자들의 경영난을 기화로 통신시장 구조조정이 또다시 화두로 떠오랐다. 굳이 귀납법의 논리를 따르지 않더라도 시장경제의 원리가 가져온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나, 경쟁체제 도입의 역사가 워낙 일천한 탓에 통신시장의 구조조정은 그 자체로관 심사다.

 사실 지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통신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써 KT가 독점하는 ‘시장’이 아닌 시장이었다. 시장의 모습을 갖춘 지가 불과 10년도 채 안된 통신산업이 전과 다른 시장구도로 또 한번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산고를 겪고 있다.

 구조조정은 그간 산발적으로 이뤄졌으나 올들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온세통신과 두루넷이 법정관리라는 통신사업자 초유의 위기상황으로 내몰리면서 표면화됐고 덩달아 데이콤·하나로통신도 취약한 재무구조가 부각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특히 이 가운데 통신시장 구조조정의 정점에 있는 사업자는 하나로통신이다.

 하나로통신은 이동전화시장의 SK텔레콤과 더불어 단일 회사로는 KT와 경쟁할 수 있다고 유일하게 지목되는 사업자. 우리나라에 초고속인터넷의 불을 지폈으며 지금도 이 분야 시장점유율 30%로 KT를 위협할 수 있는 사업자다.

 더욱이 KT가 갖지 못한 케이블망 기반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초고속인터넷은 유선 사업자들이 기댈 수 있는 가장 큰 주력 시장. 시내·시외·국제전화 모두가 하나같이 감소 내지는 정체한 상황에서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경쟁구도 변화가 곧 유선시장의 구조조정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하나로통신의 운명이 유선 통신시장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비단 유선시장의 영향만이 아니다. 하나로통신은 후발 통신사업자군을 거느리고 있는 LG그룹(1대 주주)을 비롯, 삼성전자·SK텔레콤이 나눠갖는 지배구조다. 하나로통신이 어떤 식으로 경영 정상화의 길을 찾을 지, 이로 인해 경영권 향배가 어떻게 될 지에 따라 국내 통신시장은 물론 재계의 판도변화도 초래할 수 있다.

 LG그룹으로선 데이콤·파워콤·LG텔레콤 등 한결같이 하위그룹에 맴돌고 있는 통신 자회사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기폭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SK텔레콤은 미래 유무선통합 시장의 판도를 가늠할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하나로통신을 결코 방치할 수 없다.

 하나로통신을 중심으로 그룹의 수종사업을 통신에서 찾으려는 LG가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에 바짝 다가설 수 없다면 결국 그룹의 통신사업은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해 도태될 공산이 크다. 또한 하나로통신이 어떤 식이든 경영 정상화의 길을 걷는다면 데이콤·두루넷·온세통신 등 나머지 후발사업자군도 이를 정점으로 흡수통합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여, 사실상 KT의 막강한 견제세력이 될 수 있다. “3강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유효 경쟁체제라는 대전제만 지켜진다면 3강이든 2강이든 정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원칙은 지난 90년대말 이후 KT·SK·LG로 그려졌던 통신시장 3강 구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나로통신이라는 변수에 따라 LG 역시 재계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의 구조조정은 통신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지난해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양상을 연출하고 있다. 통신시장이 양적·질적 발전을 동반하면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처럼 구조조정의 모습도 단순히 해당 시장영역내에서의 점유율 변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과 비교할때 무엇보다 두드러진 차이점은 후발 사업자군의 구조조정이 유선이냐 무선이냐, 즉 해당 시장내에만 제한되지 않고 전범위에 걸쳐 포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하나로통신의 운명이 국내 통신시장, 나아가 재계 판도에도 입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한솔엠닷컴·신세기통신·드림라인의 흡수합병과는 판이한 차별점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통신시장 포화를 기점으로 유무선 통합·방송통신 융합·금융통신 융합 등 이른바 통신 기반의 ‘신융합(퓨전)’ 산업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데서 답을 찾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주헌 원장은 최근 “통신시장은 이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구조조정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전통적인 시장 점유율 경쟁의 차원을 넘어 여기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통부가 현 통신시장을 패러다임의 변화기로 규정, 흔들림 없는 원칙인 비대칭 규제 정책에 현실론을 수용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다음달 하나로통신의 주주총회와 두루넷 매각입찰 등 후발사업자 구조조정의 향배가 앞으로 5년, 10년 뒤 통신시장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는 예측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 통신시장 구조조정 해외에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미국 통신업계는 96년 통신법 개정 이후 신규 사업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무려 8800억 달러(약 1020조800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실제 98년 이후 대서양을 횡단하는 통신용량이 19배 가량 증가했고 이에 따라 12만5000달러를 호가한 통신회선 임대료가 1만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그 여파로 2000년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미국에서 파산을 신청한 통신업체 수만도 63개에 달한다. 세계 최대 통신회선 업체 글로벌크로싱과 미국 2위의 장거리 전화업체 월드컴 등 대형사업자들도 파산보호를 신청한 상황.

 이동통신 사업자의 경우에도 2, 3위 사업자인 AT&T와이어리스와 싱귤러와이어리스는 인수합병 대상으로 보이스스트림와이어리스를 주목하고 있고 라이존과 스프린트의 통합도 논의되고 있다. 심지어는 AT&T와이어리스와 싱귤러와이어리스간 합병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6개 사업자의 4개 사업자로의 구조개편을 앞두고 있다. 후발 사업자의 경우 시장 포화에 따른 가입자 증가율 둔화와 주가 하락으로 부채 악화와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선발 사업자의 네트워크 외부 효과가 큰 통신시장의 특성상 자유경쟁체제 아래 나타나는 시장의 쏠림현상과 90년대 말의 과도한 투자에 따른 거품붕괴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90년대 통신시장의 경쟁체제 도입과 초고속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2000년대 과잉경쟁에 따른 후발 사업자의 과도한 부채와 경영권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같은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밖에 유럽의 경우에도 브리티시텔레콤, 도이치텔레콤, 프랑스텔레콤 등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3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대금으로 자사 주식의 시가총액을 능가하는 부채와의 전쟁을 벌이는 등 세계 통신시장은 구조조정의 쓴 바람을 맞고 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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