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넘버2

 몇년전 서울에서만 관객 30만명을 동원한 영화 ‘넘버3’는 일류를 꿈꾸는 삼류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15년간 삼류 깡패에 머물렀던 주인공(한석규)이 두목을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내고 ‘넘버2’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지만 이 영화는 끝내 ‘넘버2’를 허용하지 않는다.

 ‘넘버2’를 가장 잘 묘사한 책으로는 데이빗 히넌과 워렌 베니스 교수가 함께 쓴 ‘위대한 이인자들(The Power of GreatPartnerships)’을 꼽을 수 있다. 정치, 경제(경영), 스포츠 그리고 소설속의 인물까지 10명을 소개한 이 책에선 1등 신화를 만들어낸 2인자의 역할과 함께 원제(原題)에서 나타나듯 위대한 협력과 공조의 모델을 제시한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딕 윌슨이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한 마우쩌뚱의 동반자 저우언라이와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기용돼 트루먼의 오른팔로 마셜플랜을 내놓은 조지 마셜, 클린턴의 그늘에서 묵묵히 미국의 신경제를 이끌어낸 앨버트 고어 등은 넘버2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와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은 오늘날 미국이 IT강국으로 성공할 수 있게한 재계 2인자들이다. 이들은 빌 게이츠와 앤디 그로브의 그늘 속에서 수천명의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으며 인간자본(Human Capital)이 신경제의 핵심요소임을 입증시켰다.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세태)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넘버2들이다.

 지난 주말에는 인텔의 ‘넘버2’ 크레이그 배럿이 국내 뉴스 인물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그동안 참여정부가 애타게 추진해온 다국적 첨단기업의 R&D센터 유치가 처음 성사됐기 때문이다. 배럿은 국내 IT 업계를 대표하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용경 KT 사장 등과도 만나 차세대 IT기술 개발 및 사업 협력을 논의해 오랫만에 우리나라 IT업계에 훈풍을 불어넣었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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