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백만기 변리사(7.끝)

 (사진설명= 필자가 공직 퇴임 직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 심포지엄 참석때의 모습.)

 

 그후, 나는 대전에 있는 특허청의 심사4국장으로서 공직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200 여명의 사무관급 심사관을 거느리는 엘리트 조직에서 지식경영의 필요성을 절감, 구성원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인포메이션 플라자와 수요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행정부에서 나의 의지가 투영된 마지막 작품이었다. 이후 변리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후배들의 뜨거운 시선을 뒤로 하고 공직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사표를 제출하고 국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저는 78년 특허청 심사관에서 출발해 공무원의 꽃이라는 국장으로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평생직장보다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특허청이라는 울타리를 떠나지만 변리사라는 지재권 전문가로서 계속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제2의 인생을 결정한 이유는 공직 이외의 생동감있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도전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 중심도 어느새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행됐습니다. 정말 보람있는 것은 부가가치를 직접 창조하고 국부를 증진시키는 것이지요. 지재권 분야의 프로로서, 활력있는 민간분야에서 세계 일류를 지향하며 도전해 보려 합니다, 시장에서 경쟁하며 평가받고,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고은이라는 필명의 심사관은 “....우리 국은 많은 인원 때문에 인화에 어려움이 많은데, 슬기롭게 한올 한올 풀어가신 길을 되뇌어 보니 떠나시는 길목에 왜 그렇게 흐뭇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저 떠나시더라도 부디 ‘good bye’보다는 ‘see you again’으로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후진을 위한 용퇴에 후배들은 오래도록 국장님의 훌륭한 인품의 훈장을 가슴에 달아드리고, 그 추억은 가슴속에 아름답게 아로새겨질 것입니다......”라는 답신을 해 왔다.

 21년 4개월만에 1급 관리관 승진과 함께 명예 퇴직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나는 사무관 때부터 줄곧 ‘내가 장관이라면...’ 하는 자세로 살아왔기에 홀가분했다.

 변리사로서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아시아 최대의 로펌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지났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했던가. 정부 민간을 모두 경험하고 나니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좀더 균형잡혀 감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나는 이공계 출신에게는 얼마든지 도전의 기회가 있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을 봐왔다. 이들의 성장을 위한 제도적인 정비도 필요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용기이다. 이공계 출신으로 세계적인 경영자가 된 GE 잭 웰치 전 회장의 “Control your destiny!”라는 말은 오늘의 젊은 공학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다.

 mgpaik@ip.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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