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IP전화` 구축 방식 논란

 최근 전화선(공중전화교환망, PSTN)이 아닌 인터넷회선(IP)으로 전화를 하는 IP전화가 금융권과 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그러나 IP전화 도입 및 구축방식을 놓고 업체간 의견대립이 팽팽하다. 완전(all) IP로 갈 것이냐, 아니면 기존 PBX에 IP지원 모듈을 꽂아 사용하는 과도기적인 단계로 혼합형(IP enabled)을 택할 것이냐는 게 문제다.

 시스코·스리콤 등 데이터 네트워크에서 출발한 회사들이 전자에, 노텔·어바이어·알카텔·지멘스 등 전통적인 전화 사설교환기(PBX)업체들이 후자의 진영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통념상 전화는 전화선을, 인터넷은 ADSL망과 같은 데이터망을 네트워크로 사용해왔다. 음성통신망과 데이터통신망이 별개로 구분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 네트워크가 음성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면서 IP전화가 가능해졌다. 특히 전화망과 데이터망이 통합되는 차세대네트워크(NGN)가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IP전화로의 이행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IP전화의 여러가지 부가기능과 통신료 절감 효과도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IP전화로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 IP전화장비업체들이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우선 시스코나 스리콤 등은 기업이 전화통신을 위해 구축했던 PBX를 완전히 들어내고 IP전화 장비로 새로 구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텔이나 알카텔 등은 새로 투자하는 기업이라면 몰라도 기투자한 PBX를 보유한 기업이 이를 폐기하고 IP전화를 위해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는 것은 낭비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신 기존 PBX에 IP지원 모듈을 꽂아 과도기적으로 사용하고 전화에 새로 투자하거나 NGN이 도래했을 때 완전IP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충고한다.

 장비업체들이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근거로 마케팅을 펼치면서 IP전화를 도입하려는 기업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IP전화장비업체들이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것을 두고 각자의 생존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IP전화가 대세인 것만은 분명한 상황에서 어떤 진영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 적절할지 기업 IT담당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된다.

 <김인진기자 ijin@etnews.co.kr>

 

 ◇‘혼합형이다’ <김영호 노텔네트웍스코리아 부사장>

 완전 IP로의 진화는 기술적으로 볼 때 합리적이고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객의 환경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몇가지 사항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수십년 동안 사용해온 교환기 환경을 무시하고 완전 IP로 바로 교체를 주장하는 것은 기존 투자환경을 모두 버리라는 것인데 이는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가 될 수 있다.

 IP전화시장이 아직까지 활짝 열리지 않는 것도 고객들이 이런 환경 교체작업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네트워크에서 완벽한 음질과 애플리케이션 기능으로 지원하는 것도 이뤄지지 않았고 아직 기술적으로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노텔 등 PBX업체들도 모두 완전 IP로의 움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접근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고객의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고 문제 없이 마이그레이션(migration)하도록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시스코 등은 전체적인 그림만을 강조하고 비전만을 제시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기능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객에게 과도한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완전 IP로 구현했을시의 음질 및 보안문제는 아직 미지수다. 데이터 네트워크에서 교환기 기능을 전부 수용할 수 있다는 것도 주장일 뿐 검증된 내용이 아니다.

 우선 데이터 네트워크에서 600여가지의 음성 관련 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하다. 현재 데이터 네트워크에서 음성기능을 구현하는 것은 기본적인 몇가지뿐이며 추가로 구현하더라도 별도의 애플리케이션 서버로 인한 비용이 증가한다. 또한 실제 구축에 들어가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완전 IP로 전화를 구현하는 IP PBX의 경우 시스템 제어부인 콜 매니저, 인터페이스부인 게이트웨이, 스위칭부인 허브, 가입자부간의 상호 제어와 정보전달의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안내 멘트 등의 호 처리 제약, 게이트웨이에서 발생되는 호 제어와 추적 등의 한계, 구성요소별 별도 데이터베이스 설정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시스코 등은 또 완벽한 시스템 이중화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단순 백업 수준이다. 프라이머리/세컨더리(primary/secondary)가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닌 종속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프라이머리 장애시 세컨더리가 프라이머리 기능을 지원하지 못한다. IP PBX는 또 게이트웨이와 전용 장비에서의 아날로그 가입자 수용시, 호 전환/회의/대리응답 등의 기본 기능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VG 248을 설치해야 하고 착신 링 구별, CID, 서비스 톤 변경 등의 기능은 불가능하다. PBX의 ACD에 해당하는 기능을 하는 ICD가 로그인/아웃/준비 등을 제어하려면 개별적인 PC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다. PC가 다운되면 전화기를 이용한 수동제어를 할 수 없다. IP PBX는 또 기존 PBX처럼 과금 원시 데이터를 송출시키는 과금전송방식이 아닌, 콜 매니저의 SQL DB에 저장한 후 상세과금장비쪽에서 콜 매니저로 접속해 DB를 쿼리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실시간 적용이 어렵다. 기존 PBX에서 가입자가 외부발신시 과금을 부과하기 위한 정보는 발신자, 발신번호, 발신 루트와 트렁크, 통화시간 등의 정보가 필요하고, 이 중 실제 과금은 통화시간에 따라 매겨진다. IP기반에서는 발신 트렁크 정보와 그 점유시각에 대한 정보 필드가 없어 대국에서 반전신호가 없는 경우 가입자가 실제 통화가 이뤄진 시간이 아닌 오프 후크(off-hook)한 시간부터 트렁크 복구시간을 통화시간으로 과금처리해 고과금이 발생된다. 운영과 유지관리면에서도 접속 포인트는 유지관리 터미널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터미널과 프로그램이 다르다. 이로 인해 접속자 관리와 보안이 어렵다.

 100년이 넘게 사용돼온 PBX의 역사와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시장을 무작정 교체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텔이 완전 IP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고객의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 설치된 PBX의 IP기능을 추가하는 전략이며 신규고객에게는 기존 PBX와 IP를 완벽하게 접목시키는 완전 IP로 구현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화시장이 IP 기반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업체들은 여전히 안정적인 PBX 기반의 기능을 살리고 활용하는 백업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이유는 데이터에 비해 매우 민감한 음성통신의 작은 문제가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기존에 PBX 기반 환경을 구축하는 데 든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완전 IP다’ <김중원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상무>

 현재 IT의 이슈가 되고 있는 IP전화나 차세대네트워크(NGN)와 관련된 기사나 논쟁을 보다보면 항상 빠뜨리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왜 IP전화와 같은 IP컨버전스(convergence)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단순히 음성전달을 PBX 기반의 디지털 신호에서 라우터 기반의 패킷으로 바꾸기 위해 IP전화로 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전통적인 PBX업계와 데이터 네트워크 업계 모두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 있다. 그것은 전화망과 데이터망이 하나의 망으로 합쳐진다는 것이다. 인터넷 등의 데이터망이 발전하고 전세계적으로 망을 구축하게 됨에 따라 구태여 별개의 망에 따로 투자할 필요가 없으며 점증하는 데이터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를 전화망을 통해서 지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일반 회사의 IT자원과 전화망은 통합되지 않아 서로 별개로 작동하고 있어 생산성 향상이라든지 기능통합같은 더욱 진보된 환경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통신서비스업체 입장에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전화서비스로 새로운 부가서비스를 통한 수익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NGN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고 전화망으로 합쳐져야 하는가 데이터망으로 합쳐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데이터망으로 전화망이 합쳐지게 되는 것이다. 전화망의 기본 대역폭은 64Kbps(DS0)로 데이터망의 기본 속도인 이더넷의 10Mbps에 비할 바가 못되며 전화망과 데이터망을 통합시킨 것이 아니라 통합된 망을 통해 인터넷서비스, 멀티미디어서비스, 유연한 확장성, 다양한 기능부가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합된 망이 데이터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시사하고 있으며 시장과 고객이 IP전화나 NGN과 같은 통합시대의 장비와 기술을 선택할 때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항이다.

 이 때문에 시스코나 스리콤과 같은 데이터 네트워크 회사뿐만 아니라 어바이어나 노텔과 같은 PBX업체에서도 완전 IP 기반의 IP전화를 궁극적인 종착역으로 삼고 통합에 따른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PBX업체들이 완전IP로 가기 전에 혼합형을 주장하는 것은 과도기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완전 IP로 갈 경우 이들이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 PBX시장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는 비즈니스적인 약점이 있고 데이터 네트워크 회사보다는 IP기반의 시스템 기술이 떨어지는 기술적인 약점이 있다. 현재 IP전화의 구성도를 보면 시스코와 같은 데이터 네트워크 회사에서는 게이트웨이와 라우터를 통합, 한 장비로 외부망 접속에 사용하는 데 비해 PBX업체들의 IP전화는 게이트웨이와 라우터를 별도로 설치하게 되어 있다. 이는 곧 PBX회사의 IP관련 기술이 데이터 네트워크 회사보다 못하며 결국은 라우터 기반의 망(인터넷)을 타기 위해서는 자사가 아닌 타사(데이터 네트워크 회사)의 인프라를 사용해야 하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PBX업체들이 주장하는 혼합형은 고객에게 2중 투자를 강요한다. 언뜻 현재의 PBX에 IP지원 모듈을 설치해 IP전화를 연결하기 때문에 투자보호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IP전화를 도입해야 하는 근본적인 취지를 재고한다면 혼합형은 절름발이 솔루션이고 PBX업체도 얼마 안있어 고객에게 다시 완전 IP를 도입하라고 말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신문기사를 통해 PBX의 최대 수요처 중 하나인 KT에서 마지막 교환기를 걷어내고 패킷장비로 바꾸는 기념식을 한 것을 보았다. 이처럼 PBX는 더 이상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합형을 고집하는 것은 고객에게 부담을 강요하는 것이다. 장비 가격면에서도 교환기에 비해 저렴한 IP PBX로 도입하는 것이 IP지원 모듈을 장착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IP지원 모듈을 장착하다보면 포트 수가 모자라 슬롯을 확보해야 하지만 기존 PBX에 연결된 전화를 대체하기에는 모자라 새로 PBX를 도입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한 콜 셋업(call setup)시 PBX의 IP지원 모듈이 게이트웨이 등과 복잡한 과정을 사용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IP PBX에 비해 3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며 오류가 발생하는 확률도 높아진다.

 비싼 돈을 들여 IP전화를 혼합형으로 구축했을 때 전화통화를 패킷화시킬 뿐 현재의 네트워크가 요구하는 다양한 부가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네트워크 구성이 복잡해지며 장애의 위험에 노출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완전 IP로 가기 위해 이중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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