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줄거리:세계최대의 일본통신회사 JTT가 세개로 분할되는 큰 일이 있은 직후 이 분할을 기획하였던 엘리트 매니저 후지사와 아키라의 자살은 회사내외에 큰 충격을 준다. 이 사건에 특히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후지사와의 도쿄대학교 친우이자 입사 동기생 다나카 에이지다. 회사 내에서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인생의 방향을 잃고 있던 다나카는 친구 자살의 미스터리를 밝히고자 회사를 사직한다.
후지사와 아키라는 자살 직전 어린 시절부터 써 온 일기를 다나카에게 남기고 갔다. 이 일기를 바탕으로 다나카는 후지사와라는 타인의 인생 역사를 더듬는다. 젠틀하고 과묵하며 유능했던 후지사와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숨은 얼굴들과 사연들이 있었다. 그는 재일 조선인이었다. 또한 그의 부친은 광역폭력단의 간부였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후지사와가 청부살인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JTT의 인사과장이었던 요코다 도시오의 실종은 후지사와의 요청에 따른 폭력단의 살해였다. 이 최초의 청부살인의 내막을 벗기는 과정에서 다나카는 두 번째의 청부살인이 있었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다나카와 그의 애인 히로코의 집요한 조사의 결과, 두 번째 청부살인의 대상자는 일본을 좌우할 수 있었던 정계거물의 하수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배경은 JTT의 민영화에 따른 주식거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은 운이 좋은 나라다. 원자폭탄 두발로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종지부를 찍게 한 미국은 태평양으로 공산주의가 퍼지는 것을 막는 뚜껑으로 일본을 부활시키기로 작정한다. 천황제의 유지를 허용하면서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제국주의침략의 바퀴였던 재벌들을 그대로 봐주었다. 죽고 죽이던 적이 산타클로스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 산타클로스의 선물보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한 것이 1950년에 발발한 한국동란이었다. 한 5년 문을 닫고 있던 군수업체들은 엄청난 특수경기를 맞고 일본인들은 패전의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된다.
별로 대단한 정치이념도 없이 우파보수주의 하나만을 내걸고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하여 거대정당 자민당이 탄생한 것은 한국동란 특수로 일본이 많이 자리가 잡힌 1955년이었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자민당은 단 한번 총리자리를 사회당에 잠시 내어 준 것 이외에는 줄곧 일당독재를 즐겨온 터다. 상·하원에서 늘 반수 이상의 의석을 유지하며 일본을 지배해 온 자민당은 이념으로 뭉친 정치가들의 집단이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뭉친 몇 개 파벌의 덩어리였다. 의원내각제 하에서 국회는 수시로 해산되고 새로이 선거를 해야 하니 선거자금은 정치가의 목줄이었다.
이러한 자민당의 생태를 한 몸에 압축한 정치가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다나카 가쿠에이. ‘수는 힘이다’라는 그의 철학 아닌 정치철학은 일본정치의 요체를 요약한 것이었다. 즉 자기파벌의 국회의원수가 힘이라는 것이다. 파벌의 국회의원수가 많아야 내각에 대신을 많이 내고 나가서 총리를 지명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는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역사에 보여주었다. 소위 금권정치였다. 15살에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7년 19살의 나이로 건설업을 일으켜 거금을 모으고 전후 29살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하였으며 54살에 최연소 일본총리가 된 다나카 가쿠에이.
다나카 가쿠에이를 일으킨 것도 돈이고 떨어뜨린 것도 돈이었다. 록히드사가 73년부터 2년간에 동사의 여객기를 일본항공사들이 구입하도록 180만달러를 뇌물로 바친 소위 록히드사건으로 다나카는 83년 감옥에 들어가고 만다. 다나카가 감옥 안에 있어도 그의 파벌 위력은 여전하여 총리를 만드는 소위 킹메이커의 역할을 지속되었다. 시들어가는 다나카의 힘이 마지막으로 발휘되어 탄생한 것이 나카소네 총리였다. 1918년 같은 해에 태어난 이 두 사람은 성장배경은 다르나 거의 같은 시기에 국회에 진출한 정치적 동지였다. 다나카의 유죄판결이 나기 한해 전인 82년에 총리에 오른 나카소네는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파정객이었다.
나카소네와 다나카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었다. 둘다 뇌물수수혐의로 정계에서 축출되는 것이었다. 여러 정치가들이 리쿠르트라는 회사의 자회사 주식을 받아 나중에 액면차액을 챙긴 소위 리쿠르트 스캔들에 휘말려 나카소네는 87년 일단 정계에서 은퇴하고 만다.
1999년 7월 2일
도쿄 국회도서관
“흠….” 참고도서실에서 여기까지 알아보고 난 에이지는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거물정치인의 정치자금에 관련되는 인물에 대하여 탐색하기란 꽤 난감한 것이다.
“가만 있어봐요.” 히로코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말한다.
“우리 아버지도 옛날에 고향출신 국회의원의 고엔카이(後援會)에 들어가 계셨는데 얼마 안되는 헌금이라도 바치면 일년에 한번씩 이 나가타초(永田町)에 수학여행 하듯이 오셔서 국회의원 사무실을 구경하기도 하셨는데….”
“그러면 이노우네라는 인물은 과거 다나카 총리의 고엔카이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알 수가 있겠네….”
“그렇지요.”
참고서적을 보니 에츠칸자이라는 다나카의 후원회는 동네사람들의 참여가 특히 열성이어서 누구나 만엔 정도의 기부금을 매년 냈다는 것이다. 다나카는 기부금을 열심히 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고속철도 신칸센을 이리저리로 돌도록 설계를 시키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에츠칸자이라….”
둘은 멀뚱히 쳐다보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사서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그래도 여기는 국회도서관이니 국회의원에 관해서는 다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자신감이 없어 주뼛거리고 다가 온 둘에게 사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헌정기념자료실이라는 별도의 자료실에 가면 일본정치에 관한 사항은 거의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도서관의 한 층을 차지하고 있는 헌정기념자료실은 고색창연한 책들이 꽂혀 있고 위엄이 있었다. 사서는 둥그런 얼굴에 단발머리를 한 40대의 여자인데 풍기는 느낌도 고색창연하다. 원래 다나카 총리의 출신현인 니이가타현 사람인데 아버지가 참여하시던 에츠칸자이에 대하여 좀 취미 삼아 알아보고 싶어 왔다고 하자 심심하던 여자는 눈에 빛이 나며 바빠지기 시작한다. 혹시 우리를 잊었나 의아심이 들 만큼 긴 시간이 지나 돌아 온 여자는 만면에 웃음이 그득한 데 가을에 수확물을 거둔 농부의 아내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책제목은 에츠칸자이 명부였다. 75년판의 책은 보존상태도 좋았고 매우 두껍다.
책을 넘겨 받으면서도 둘은 난감하다. 이 두꺼운 책에 이노우에가 실려 있으란 법도 없고 실려 있다 하더라도 찾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
“저는 사실 에츠칸자이의 전성기 시절은 잘 아는 분한테 당시의 수고담이나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 그래요? 가만있자…. 아시다시피 에츠칸자이는 현재 존재하는 후원회가 아니지요. 다나카 총리는 타계하셨으니까…. 그렇지만 당시 다나카 총리 후원회 간부로 일하던 분이 의원회관의 양식당을 하고 계시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 아마 중의원회관일거에요…. 그리고 가 보시지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국회는 하원인 중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이 별도의 건물을 쓰고 있는 것이다.
중의원회관의 양식당을 찾은 것은 아직 정오가 되려면 먼 시간인데도 손님이 꽤 있다. 국회의원 같이 생긴 사람을 별로 없고 거의 내방객인 모양이다. 카레라이스를 드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정치가들은 워낙 말이 많아서 말 많이 하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영양식인 카레라이스로 정착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카레라이스를 시켜 먹은 둘은 계산을 하며 카운터의 아가씨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말을 붙인다.
“우리 니가타에서 올라 온 촌사람들인데 혹시 사장님을 뵐 수 있을까요?”
어린 아가씨는 힐끗 보더니 군말 없이 내선전화를 돌린다.
잠시 후에 온 이는 60살은 넘어보이는 중늙은이인 데 식당주인이라기보다는 시골학교 교장쯤으로 보인다.
“저 실은 니가타가 고향인 사람인데 전에 아버님이 열심히 참여하시던 에츠칸자이에 대해 좀 여쭤보고 싶어서….”
“아 그래요! 그것 참 반갑소이다. 그래 니가타 어디 출신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니가타를 한번밖에 가보지 못한 에이지는 일순 당황하다 급히 답을 지어낸다.
“네. 우오누마입니다. 지금은 대학이 들어 선 곳에서 가깝지요.”
“아, 일본국제대학 말이군…. 그곳도 좋은 곳이지. 자, 내 사무실로 갑시다.”
곤다라는 식당 사장의 사무실은 가구가 오래 된 것이어서인지 제법 품위가 있다. 차를 한잔 마시고 본론을 꺼낸다.
“실은 제 부친이 우오누마에서 정미소 사업을 하며 옛날에 이노우에 신지라는 분의 신세를 많이 졌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저께가 부친의 기일이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노우에상에게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 혹시나 하여 에츠칸자이 분이라면 아실까 해서 묻다보니 여기까지 와서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 말에 곤다의 얼굴은 갑자기 잿빛이 된다. 한참을 있더니 퉁명스럽게 말을 뱉는다.
“그놈에게 신세를 졌다는 분은 처음 듣는군…. 그자는 아마 지옥에 있을거요.”
sjroh@alum.mi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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