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전자상거래 소비자법 규제냐,육성이냐.

 ‘소비자 보호냐, 산업 육성이냐.’

 다음달 정기국회를 앞두고 전자상거래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해온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공식 심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산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공청회 등에서 누차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해왔다.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전자상거래사업 자체가 힘들다며 법안 연기나 보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법안 연기가 여의치 않다면 ‘의무 선택’이 아닌 ‘권장 사항’으로 수정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거래규모와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소비자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팽팽하게 맞서온 상황이다.

 공정위 개정안의 골자는 소비자보호를 위해 산업계가 일정 정도 비용부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사기성 쇼핑몰 ‘하프플라자’와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보완이 절실하다는 입장에서 출발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10월부터 법안 개정을 공공연히 밝혀왔으며 세부적인 안을 확정하고 최종 국회 통과만 기다리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법률 조항은 ‘소비자피해 보상보험 계약 등과 관련한 제24조’다. 이 조항에서는 권장사항인 소비자피해 예방제도를 의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쇼핑몰이 소비자피해 보상보험이나 매매보호장치(에스크로) 가운데 하나에 의무가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쇼핑몰공제조합을 설립하고 보험이나 에스크로를 도입하지 않는 업체는 조합에 가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공정위는 “전자상거래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보험·에스크로·공제조합 가운데 한군데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는 시장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형 몰과 중소 쇼핑몰의 구분 없이 일괄 의무가입은 힘들다는 의견이다. 전자상거래 사기사건이 발생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중소 쇼핑몰이며 대형업체는 오프라인 이상의 안전장치를 갖고 있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제조합도 소비자피해 예방이 열악한 업체 중심으로 설립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안으로 산업계는 통신판매업 ‘신고제’를 ‘등록제’로 바꾸는 안을 제시했다. 현행처럼 시·군·구청에 신고 후 영업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규모의 자본금을 등록기준으로 하고 미달하는 업체는 보상보험 등을 의무가입하는 쪽이 더욱 현실에 맞다는 설명이다.

 특히 각종 수수료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추가 비용부담은 전자상거래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전자상거래업체는 극심한 가격경쟁으로 유통마진이 모든 업종 중에서 가장 낮은 5% 내외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배송료와 카드수수료(2.5% 이상), 지불대행업체 수수료(0.2∼0.4%)로 추가비용을 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에스크로 수수료(1%) 또는 보증보험 수수료(0.5%), 수신거부시스템 사용수수료 등을 추가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존 법으로도 소비자보호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며 법안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피해는 제도 미비보다는 기존 법을 지키지 않는 데서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의 근거로 산업계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공정위), 소비자보호법(재경부), 전자거래기본법(산자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공정위),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산자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정통부), 전자거래 소비자보호지침(공정위), 전자거상거래 표준약관(공정위) 등 이미 존재하는 법안을 제시했다.

 전자상거래업계는 “쇼핑몰 브랜드와 규모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안전방안을 강제하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업체의 비용부담을 가중시켜 전체 산업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비자단체의 눈치를 보는 공정위의 입장과 어려운 시장상황에서 더이상의 비용부담을 감수할 수 없다는 전자상거래업계의 강경한 목소리가 9월 국회 발의를 앞두고 어느 선에서 조율될지 주목된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전문가 인터뷰>

 ◇소비자보호(개정안 찬성) / 소비자보호원 이병주 사이버센터 소장

 “전자상거래에서 소비자보호문제는 시장 육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주어야 상거래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할인점이나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과는 달리 전자상거래는 비대면거래인 만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인 안전판이 필요합니다.”

 이병주 소장은 “법안 개정이 오히려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거래규모와 비례해 피해규모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사회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프플라자 사태 이후 정부에서 사기성 쇼핑몰의 감독을 강화했지만 피해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최근 소보원이 집계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하프플라자 사태 이후 올해 3월에서 5월까지 피해건수가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406% 증가했습니다. 이 기간중 무려 192개의 쇼핑몰이 하프플라자와 유사한 거래방식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습니다.” 피해규모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인 소비자 구매행태도 있지만 제도적인 장치가 미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 개정과 동시에 공정위와 함께 안전마크 제도도 시행할 계획입니다. 정부가 사이트의 신뢰를 심어준다면 소비자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각에서는 유사한 인증시스템을 들어 반대하지만 인증제도가 확정된다면 시장에서의 반응도 달라질 것입니다.”

 이 소장은 “피해사례 유형분석 결과, 신용카드보다는 현금거래가 가장 심각했다”며 “이번 법 개정은 날로 늘고 있는 현금거래의 피해를 줄이자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또 “전자상거래업체의 1% 비용부담이 사회적인 손실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 육성(개정안 반대) / 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협회 김윤태 사무국장

 “무조건 제도와 법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정부의 발상 자체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법으로 치밀하게 규제하더라도 이를 비켜가는 신종 사기 사례가 비례해 증가할 것입니다.”

 김윤태 사무국장은 “이미 전자상거래는 정보시대 도래와 맞물려 새로운 거래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산업계와 업계 주도로 전자상거래의 걸림돌을 제거해야지, 정부가 간섭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전자상거래 피해를 확대해석하고 업계에서 자체 정화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너무 앞서 나간다는 입장이다.

 “시장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가 바로 전자상거래입니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5000여개 업체가 난립해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서비스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바로 ‘퇴출’입니다. 정부에서 법을 마련하기 전부터 이미 시장에서 자리잡은 업체는 안전한 거래를 위한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한 상황입니다.”

 김 국장은 “사기성 목적으로 개설한 중소 사이트의 피해사례를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출발 자체가 잘못됐다”며 “이제 막 궤도에 오른 전자상거래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해외업체와의 경쟁력을 들어 법안 개정의 부당성을 설명했다.

 “전자상거래는 국경이 없는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를 대상으로 국내외 사업자끼리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해외에도 사례가 없는 각종 소비자보호장치로 국내 사업자에만 원가부담을 가중시키면 당연히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윤태 국장은 “정부가 말한 1%의 비용은 작은 수치같지만 치열한 시장경쟁과 흑자를 위해 감량경영에 나서는 산업계에는 매우 큰 부담”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일지 >

 2002년 10월 24일 이종걸 의원 법안 발의

 2003년 3월 18일 공정위·소비자보호원 법안 공청회 겸 세미나

 2003년 4월 7일 공정위 대통령 업무 보고

 2003년 4월 9일 박병석 의원 발의

 2003년 4월 21일 법안심사소위 개최

 2003년 6월 21일 정무위 박병성 의원 검토 보고

 2003년 9월 정기국회 법안심사 소위 검토 의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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