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로봇산업은 초기부터 미국과 유럽, 일본의 삼파전 양상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 발전해왔다. 로봇의 여명기였던 62년 미국 유니메이션사는 GM의 자동차공장에 산업용 로봇을 공급해 자동차와 로봇산업의 전략적 동반관계를 최초로 성사시켜 진짜 로봇시대를 열었다. 미주대륙 밖에서 로봇기술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나라는 일본이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67년 유니메이션의 산업용 로봇을 재빨리 수입하고 끈질긴 협상 끝에 유니메이션의 면허생산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곧이어 야스카와, 나찌후지코시, 화낙 등이 로봇시장에 뛰어들었고 일본 로봇산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70년대 들어 유럽도 로봇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서유럽 국가는 정밀기계분야의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보다 뛰어난 산업용 로봇을 만들었는데 스웨덴 ABB, 독일 벤츠계열의 KUKA는 77년부터 독자적인 로봇제품을 양산해 유럽 자동차업계의 로봇수요를 거의 독식했다.
같은 시기 미국의 로봇산업은 GM, 포드 등의 자동화 수요를 등에 업고 순항했으나 미국 자동차업계가 일본 자동차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70년대 후반부터 이상 조짐이 나타났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품질과 연비가 뛰어난 일제차가 시장을 잠식해오자 위기감을 느끼고 생산성이 낮은 공장라인의 폐쇄를 추진했다. 불똥은 엉뚱하게 미국 로봇업계로 튀었다. 노조가 사측에 감원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차량조립용 로봇의 신규도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로봇업체들이 도요타, 닛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급신장하는 동안 미국 로봇업계는 극심한 내수침체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숙적 일본의 생산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일제 산업용 로봇을 앞다퉈 도입하는 배신행위까지 저질러 미국 로봇업계에 치명타를 날렸다. 결국 전통을 자랑하던 유니메이션과 여타 미국 기업들은 80년대 차례로 문을 닫고 외국에 팔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로써 일본은 로봇기술의 스승, 미국을 제치고 명실공히 로봇왕국으로 부상했다. 오로지 유럽만이 일본 로봇산업의 독주를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미국은 일본에 뺏긴 로봇시장의 주도권을 다시는 되찾지 못했고 이후 우주, 극한용 로봇개발에 주력했다.
절치부심하던 미국은 90년대 IT혁명을 주도하면서 제조업신화에 빠진 일본경제를 보기좋게 따돌렸다. 일본은 자신들의 산업용 로봇시장이 한계를 보이자 지능형 로봇분야에 국운을 걸고 매달리고 있다. 반면 미국의 로봇산업은 9·11 테러 이후 첨단 로봇무기 수요를 기반으로 도약기를 맞는 형국이다. 로봇삼국지는 아직 천하의 주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영웅호걸들의 패권다툼이 계속되는 형국이다. 요즘 신정부가 로봇을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육성한다는데 이 어지러운 로봇강호에서 한국이 설 자리는 어디쯤일까.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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