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리처드 코니프 저, 까치글방 펴냄
‘부∼자 되세요’란 말이 열병처럼 퍼지던 때가 있었다. 재물이 들어오기를 공개적으로 원하고 기원하는 중국인과는 달리,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대의명분으로는 청렴결백을 숭상하고 가난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던 우리의 옛 선비정신으로 본다면 통탄할 일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서구 자본주의화와 근자의 배금주의 물결 속에서 ‘부자’라는 대상은 공개적으로 좋아하건 비난하건 대다수의 범인들에게는 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 한번쯤 돼보고 싶은 대상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욕구를 반영하듯 서점가에서는 ‘부자아빠….’ ‘나는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 등 부자가 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많은 재테크관련 서적들이 줄줄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
리처드 코니프가 쓴 ‘부자’라는 책은 ‘부자’라는 키워드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재테크 관련 서적과는 좀 궤를 달리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부자들의 행동과 생활양식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에서 기술하는 부자는 ‘이웃집의 백만장자’에서 그리는 근검절약으로 이룩한 그저 먹고 살 만한 계층이 아니라, 인류사회의 극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 책이 소위 ‘부자열전’과 또한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부자’들을 새로운 동물의 ‘아종’으로 규정짓고 호모사피엔스 페쿠니오스라고 명명한 뒤 특별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별난 동물들로서 분석하고 탐구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에 근거해 ‘부자’라는 특별한 동물의 사회적 지배, 현란한 과시행동, 집단 내부의 서열, 짝짓기 형태들을 마치 산악 고릴라의 생태를 연구하듯 다람쥐 원숭이들의 행동양식을 연구하는 방법 그대로 기술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부자라는 특별한 종을 다루는 딱딱한 생물학 입문서는 결코 아니다. 저자는 과학서적처럼 논리적 즐거움의 바탕 위에서 마치 침팬지 집단을 연구하듯이 부자들의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근영촬영 및 행동관찰, 인터뷰 등 다양한 실증적 방법으로 인간사회의 현상을 재미있게 기술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사회의 적자생존 경쟁에서 가장 성공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부자들의 행동양식에서 침팬지 무리가 가진 지배습성, 과시, 성적인 행동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또한 칭송받는 부자들의 이타행위·기부행위가 어떻게 적자생존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지에 대한 분석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행동까지도 특별히 조류·침팬지와 다르지 않다는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부자’는 부자들뿐만 아니라 필자 같은 범인들에게도 재미와 갖은 에피소드의 잔치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연세대 김영용 교수 y2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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