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총체적 불황 3대 극복기

 좀처럼 불황의 먹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불황의 골도 깊다. 국내 제조업계는 요즘같은 불황상황을 일컬어 20년 만에 처음 느끼는 최악의 상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경기가 바닥을 쳤으니 조만간 상승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이 나온지도 벌써 1년이 다 돼가지만 별로 나아진 건 없다. 이라크전이 조기종전될 경우 급속한 경기회복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선 일부 시장조사기관들이 다시 하반기 낙관론을 강조하고 있지만 하반기 회의론을 주장하는 조사기관도 적지 않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오리무중의 경기상황이 지속되자 국내 제조업계는 불황탈출에 분주하다. 환경변화에 사운을 맡기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불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유망사업에 힘을 실어라=삼성전기·대덕그룹·이수페타시스 등 대표적인 경성기판 업체들은 연경성(Rigid-Flexible) 기판시장 진입을 위한 숨가쁜 경주를 벌이고 있다. 전자·정보 통신기기 초소형화 및 다기능화에 힙입어 RF기판 응용분야가 휴대폰 위주에서 디지털카메라·개인용휴대단말기·디지털캠코더 등으로 폭넓게 확대됨에 따라 이 시장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의도다.

 노트북PC 및 모니터용 TFT LCD에 주력해온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돈 되는 휴대폰용 LCD사업을 강화, 수익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

 삼성전기(대표 강호문)는 휴대폰용 RF기판 세가지 모델을 독자 개발, 시범 양산중에 있다. 이 회사는 90/90㎛급 패턴의 4층짜리 RF기판(연성 2·4층)을 삼성전자 등 이동통신단말기 업체에 7월부터 본격적으로 공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6층짜리 RF기판도 개발해 사업 고도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수페타시스(대표 김종택)는 휴대폰용 6층 및 4층짜리 RF기판(연성 2층)을 개발, 이동통신단말기 업체를 대상으로 샘플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제품양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00/100㎛급 패턴의 디지털카메라용 6층 짜리 RF기판은 일본 업체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어 월 300㎡이던 주문량이 하반기부터는 월 500㎡로 급상승할 것으로 낙관했다.

 대덕그룹도 6층 및 8층짜리 75/75㎛ 패턴의 RF기판(연성 4층)을 8월께 개발, 선보일 계획이다. 엑큐리스(대표 김경희) 역시 RF기판 시장진입을 위해 현재 휴대폰용 시제품을 개발한 가운데 마케팅 대상 업체를 물색중에 있다.

 이수페타시스 김종택 사장은 “RF기판은 입체적인 회로설계가 가능, 세트제품의 초박막·초경량 기술추세에 적합할 뿐더러 IT 등 전방산업 경기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정통적인 경성 기판업체들이 매출구조 안정화 차원에서 적극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대표 윤종용)는 소형 디스플레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휴대폰용 디스플레이로 1.7인치부터 2.32인치까지 총 9종의 TFT LCD제품을 선보였으며 이를 통해 월 100만대 수준에 불과한 소형 디스플레이 생산량을 연말까지 4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필립스LCD(대표 구본준)도 마찬가지로 6.5인치, 7인치, 8인치 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이고 소형 디스플레이 시장공략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사업다각화로 틈새시장을 뚫어라=반도체 장비업계는 반도체불황이 3년째에 접어들자 생존차원에서 이종(異種) 사업으로 손을 뻗고 있다. 신규진출 선언 사업이 반도체와 무관해 리스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기복이 심한 반도체 경기 사이클을 극복하겠다는 각오다.

 LCD 검사장비 업체 파이컴(대표 이억기)은 이달 초 진동 스피커 사업진출을 선언하고 최근 미국에서 열린 국제정보통신전시회 FOSE2003에 시제품을 선보였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업체 실리콘테크(대표 우상엽)는 최근 휴대폰 단말기 제조사업에 진출, 이달 말 197만달러 규모의 휴대폰을 홍콩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수출하기로 하면서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예고했다.

 이밖에도 LCD 장비업체 솔트론(대표 김정곤)은 지난해 8월 시스템통합(SI)업체 닻컴씨오케이알을 합병, SI사업에 진출했으며 지난해 서울일렉트론 반도체사업부문에서 분사한 셀트론(대표 임종성)은 올해부터 일본 2차전지 관련 장비를 수입 판매한데 이어 연말까지 자체 개발한 제품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솔트론의 김정곤 사장은 “경기에만 의지하는 반도체 장비사업만으로는 기업의 성장한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만 고집하는 것은 극히 보수적인 발상”이라며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전문기업과 연대하면서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신규사업을 추진한다면 수익분야 하방경직성이 훨씬 견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력으로 승부해라=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다고 다짐하며 주력사업의 기술력과 품질제고로 정면돌파하려는 기업들도 있다.

 PCB 장비업체 SMC(대표 이수재)는 외주 형태의 수평방식의 전기동도금 생산라인을 동종업계 최초로 직접 운영키로 했다. 외주에 의존하는 도금의 신뢰성을 이유로 들어 국산 장비 도입을 꺼려하는 기판업체들의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전략이다. 이수재 사장은 “2년 전 제품성능이 우수한 동도금장비를 개발했지만 기판 업체들이 도입을 기피한 탓에 이제까지 생산 현장에서 장비 신뢰성 여부를 검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며 “마케팅 차원에서 외주영업을 벌여 자사 장비의 신뢰성을 검증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생체인식보안 및 영상저장장치(DVR) 업계는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첨단기술 개발로 불황을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코디콤·성진씨앤씨 등 DVR 업체들과 리얼아이디테크놀로지 등 생체인식업체들은 올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적게는 20∼30% 가량, 많게는 두배 이상 증액했다. 코디콤은 지난해 17억원 수준이던 R&D 비용을 올해 40억원 이상으로 늘려잡았고 성진씨앤씨도 전년보다 13억원을 증액, 지문인식업체 리얼아이디테크놀로지는 올해 R&D 예산을 전년대비 30% 가량 늘리고 인원도 10여명 보강하기로 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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