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하이닉스 사태` 대응 유감

◆경종민 KAIST교수 kyung@ee.kaist.ac.kr

 한국 사회에서 빈번히 터지는 사고나 그 사후처리 과정을 보면 근본적인 예방책의 마련은 거의 시도되지 않고 미디어의 질타하는 소나기 세례만 지나가면 다시 무방비 상태로 남는다. 왜 그럴까. 국가의 중추기능인 환경, 인력 육성, 국방, 사회보안, 과학기술, 외교통상, 산업 등의 정책을 탁월하게 끌고 가는 단단한 체계와 탁월한 전문가 그룹이 형성돼 있지 못한 것이 문제다.

 특히 나라의 큰 일은 그 분야의 가장 탁월한 그룹이 단단하고 투명하며 유연한 체계를 갖고 일관되고 신속·정확하게 큰 줄거리를 잡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인재들이나 기관·조직은 많은 것 같은데 정작 전적으로 큰 일을 믿고 맡길 만한 탁월한 체계나 전문가 그룹이 부족하거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탁월한 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웬만한 수준의 열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들고 중요하며, 여러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신뢰할 만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을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우리나라가 더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소득 1만달러의 장벽을 넘을 수도, 세계의 모범국가가 될 수도 없다.

 하이닉스가 미국 상무부의 상계관세 판정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가 된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단의 빚 탕감규모는 작년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한 마이크론과의 양해각서에 표시된 채권단의 지원 규모보다 훨씬 적고, 실질적인 사건의 당사자가 공히 마이크론임을 생각하면 이번의 상무부 판정은 이중 잣대로 잰 느낌이 든다. 

 물론 최선의 노력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우리나라의 중요한 기업을 지켜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이닉스가 오늘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 기술진의 실력이나 노력, 혹은 영업이나 내부경영의 부실에 의한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남을 탓하기 전에 빅딜로부터 시작돼 마이크론의 적대적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 교환 등의 과정까지 하이닉스가 걸어온 길을 보면 우리의 문제는 한 기업의 경영차원을 넘어 기술과 산업에 대한 나라의 일관된 큰 정책의 방향과 의지의 결핍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중요한 위치의 공무원이 중요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기 의견과 정책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개인의 처지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

 우리는 하이닉스 문제를 놓고 너무 오래 적전분열의 모습을 보였다. 기술전문가와 산업정책가 사이에 대화도 없었고 아주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와 채권단, 하이닉스 이사회와 경영진이 일관된 하나의 그림을 끄집어내지 못했다. 정부는 떳떳하게 산업금융의 기본 정책과 그에 의한 처리방침을 놓고 각계의 전문가들과 의견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나서서 하는 대신 채권단 뒤에 숨어 있었고 채권단 역시 판단과 행동에서 정확하거나 신속, 단호하지 못했다. 기업은 생산수율, 원가구조가 최고의 비밀에 속한다. 그런데 그 오랜 적전분열의 시간동안 경쟁회사에 모든 기업 비밀이 노출됐던 것이다.

 이 일은 이제 우리의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큰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정부의 산업기술 정책의 근간은 철저히 거시적·장기적 안목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국가로서 꼭 갖춰야 할 일이지만 민간 기업에서 못하는 일, 그것이 바로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이다. 그런데 국책연구소나 기타 국책연구개발사업이 어차피 민간에서 할 일을 정부사업이 경쟁적으로, 혹은 편승해서 하는 경우가 있다.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혹은 나라에 필요한 일보다는 내가 만드는 일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한 공명심으로 국책사업이 진행된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나라의 핵심적 역할을 할 탁월한 인력을 키우는 일, 핵심 사업의 기획·수행·평가를 하는 탁월한 운영체계를 만드는 일, 이를 위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과 각 분야의 산학연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무엇이 핵심 이슈인가,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는가를 토론해 결론을 내고 신속·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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