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멈추지 않는다.’
일본 최고 관객 동원기록을 비롯해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전미영화비평회의 애니메이션 부문상, 애니상을 휩쓸며 세계 애니메이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난 24일 개최된 제7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면서 세계 영화시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입증했다. 2년전 일본내 상영을 개시한 이래 숱한 신화를 만든 이 작품이 마침내 미국 애니메이션의 아성까지 무너뜨린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제작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동안 많은 화제를 뿌렸다. 영세한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25억엔(약 25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뿐만 아니라 흥행수입 304억엔, 관객동원수 2300만명을 기록했다. 실사 영화를 통틀어 사상 최대실적으로 일본 영화계는 이 기록이 당분간 깨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은 단지 제작사인 스타지오지브리와 미야자키 감독만의 영광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경제불황 속에서도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A타임스도 “이번 수상은 단순히 미야자키 감독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며 미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거드는 등 해외언론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쟁쟁한 미국 애니메이션을 물리치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수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외고집 미야자키 감독의 천재성이 있다. 미야자키 감독이 빚어놓은 ‘높은 표현력과 알찬 스토리 전개’가 힘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이 상업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성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 수준임을 당당히 입증해 보이는 계기가 됐다.
한편 이번 수상에 힘입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발전속도도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명성에 비해 만성적 경영악화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대다수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앞으로 상당한 투자제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들이다. 해외 투자자를 물색하거나 애니메이션의 DVD화를 추진하는 등 이번 기회를 살려 실득을 챙기려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도쿄도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에 각인시킨다는 취지아래 ‘도쿄국제애니메이션2003’을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성대히 개최했다.
개인사정상 수상식에 참석지 못한 미야자키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지금 세계가 너무나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고 있어 수상 사실을 크게 기뻐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에 대한 성토장이 된 수상식장에서 미야자키 감독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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