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는 미래 국가경쟁력이다]해외편-중국(하)

 ‘주류를 파고 들어라.’

 중국시장에서 한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이 먹혀들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류’를 타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로 통한다.

 이미 수년간 중국시장을 겪어본 기업이나 이제 갓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업체들까지 이런 대전제는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세부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개전투식 대응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주류’는 중국 정관계의 주류일 수도 있고 문화콘텐츠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중심세력일 수도 있으며 시장의 중심적인 소비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의 문화콘텐츠 관련사업 역시 ‘정부-업계-시장’이라는 3박자가 모두 갖춰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업계-시장이 갖고 있는 각각의 주류를 효과적으로 파고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는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1

 현재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물줄기는 칭화대학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 칭화대는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산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한발짝만 깊이 들어가면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아 수 있다.

 칭화대가 지난 90년대초 정보기술(IT)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설립한 칭화퉁팡(http://www.tsinghua.edu.cn)이 바로 그 연결고리다.

 이 칭화퉁팡은 지난 94년부터 게임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95년에는 한국에 자체개발한 PC게임을 판 경험도 있다. 현재는 불법복제 문제로 인해 PC게임은 완전히 정리하고, 온라인게임 합작개발과 관련서비스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한 온라인게임 전문업체와 지난해말부터 공동사업 협상을 시작해 지금 막바지 단계에 다다른 상태다.

 칭화대 교수이자 칭화퉁팡의 교육자문본부 부총경리를 맡고 있는 루다 박사는 “앞으로 인터넷기반의 엔터테인먼트가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며 그 방향에서 큰 돈흐름이 형성될 것은 명백하다”며 “칭화퉁팡도 엔터테인먼트산업에 그만큼 큰 기대를 걸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칭화퉁팡이 하는 일은 중국이 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칭화퉁팡이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바로 중국정부 최고위층이 그 방향성에 동의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중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최근의 중국이 ‘대청시대’로 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바로 칭화대학이 이끄는 시대를 말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월 구성된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회 7명의 위원 중 4명을 칭화대 출신이 차지할 정도로 칭화대의 위상은 급상승하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 총서기를 필두로 한 칭화패밀리가 정치국, 군부, 당조직을 장악하며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이 권력의 정점인 후진타오가 바로 칭화퉁팡과 연결돼있는 것이다.

 루다 박사는 “한국이 갖고 있는 엔터테인먼트분야의 높은 기술과 칭화퉁팡의 기획, 중국의 시장이 결합되면 막강한 경쟁력을 지닌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보다 많은 한중 합작모델을 찾아내고 양국이 미래 황금산업인 엔터테인먼트분야에서 함께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

 베이징에서 매일 오후 6시부터 중화인민방송의 라디오를 틀면 한국어 노래방송이 1시간 동안 흘러나온다. 중국의 도시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중간중간 나오는 멘트만 중국어일 뿐 소개되는 노래는 한국노래 일색이다. 바로 2001년 9월부터 시작된 ‘LG수기연청한국(手機聯聽韓國)’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LG수기(휴대폰)’와 ‘한국’을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달고 국영방송의 한 채널을 통해 한국어 노래가 무차별적으로 1시간 동안이나 중국인의 귀를 파고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1년 6개월 이상 정부소유 방송채널의 정식 프로그램으로 뿌리내리기까지 여러 분야의 노력이 있었지만 한 교포사업가의 집념과 대기업의 브랜드마케팅 전략, 중국방송의 상업적 투자의지 등이 골고루 제역할을 해냈다.

 이 프로그램의 산파역을 맡았던 우전소프트의 김윤호 사장은 “음악을 노래라는 국한된 개념으로만 해석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한 축으로 음악산업을 중국화하기 위해 노력한 결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취자의 대부분인 10대 중국 청소년들이 한국의 음악을 세계 최고의 음악으로 받아들이듯, 한국의 휴대폰이 세계 최정상의 제품임을 연결시켜 알린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산업과 하드웨어산업의 좋은 협력모델이라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3

 중국 최대의 방송이 중국중앙방송(CCTV)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영어권 방송을 제외하고는 10억명을 웃도는 시청자를 거느린 세계 최대 방송규모를 자랑한다.

 공룡방송 CCTV가 한국의 썸엔터미디어와 완전 3차원(D) 애니메이션인 ‘네티비(Netibee)’를 공동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방송효과나 캐릭터 등 유발효과는 추가적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상대가 CCTV라는 데 평가가 인색할 수 없다.

 네티비 공동제작에서부터 프로그램 기획, 방송 등을 총괄하고 있는 차이키화 CCTV 애니메이션프로덕션본부 부주임은 “당장 제작될 26부작은 중국·한국 등 아시아시장을 겨냥한 것이고 이후 추가될 후편 26부작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대작이 될 것”이라며 “TV시청 청소년만 3억명에 달하는 중국에서 방송효과는 속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말했다.

 CCTV의 네티비 제작, 방송의 또 다른 수훈자인 이상용 베이징여명엔터테인먼트 사장은 “네티비 방송 이후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상품화해 관련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며 “이전에 온라인게임이나 한국가수들을 이용한 캐릭터가 인쇄물 등 극히 일부분에 활용된 적은 있지만 방송캐릭터의 본격 산업화는 이번 네티비가 첫번째 시도가 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앞에 소개된 칭화퉁팡, 중화인민방송, CCTV 등의 사례 외에도 중국내 문화콘텐츠 관련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관 또는 단체만 수천개에 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애니메이션 및 캐릭터산업 특화지역으로 선정된 상하이의 정부기관인 상하이미술전영(애니메이션)제작소(http://www.ct-sh.com)나 지금까지 한국가수의 정품 음반을 95% 이상 제작해 상품화한 상하이성상(음반)출판사(http://www.ewen.cc) 등이 대표적인 ‘친한계’ 단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터뷰- 박철홍 베이징한중연합창업투자자문공사(KCVC) 대표

 

 “문화콘텐츠부문의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문제는 실물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시장 접근에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한국기업들이 중국 문화콘텐츠시장에 진출할 때 중국의 현실법 체계가 어떠한지, 실제 판례는 어떻게 나 있는지를 모르고 덤빌 때가 많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국산 캐릭터로 중국에서 아직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엽기토끼(마시마로)’의 판권과 지적재산권 분쟁을 맡아 최근 잇따른 승소 결정과 캐릭터 이용료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박철홍 베이징한중연합창업투자자문공사(KCVC http://www.chinaventure.net) 대표의 진단이다.

 베이징대 법학박사 연구생이기도 한 그는 “법적으로 콘텐츠가 보호받을 수 있어야 기업도 성장하고 산업도 클 수 있다는 인식이 이제 막 중국에 퍼져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기업이 애니메이션, 게임, 음반 등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환경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KCVC는 한국의 야호커뮤니케이션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벌써 2억1000만명을 넘어선 이동전화가입자 규모로 볼 때 벨소리나 모바일캐릭터시장이 급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야호 같은 회사들이 아무리 한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더라도 중국에서의 성공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기는 모조품을 부르고, 아이디어의 공개는 무제한의 복제를 만들어내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사업 출발부터 특허 및 지적재산권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놓지 않는다면 중간에 가서 낭패를 보기 일쑤입니다.”

 박 대표는 현재 칭화퉁팡과 한국 협력업체 사이의 온라인게임 관련 법적권리 등에 관한 법률자문과 업무조율 등을 담당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터뷰- 수잔 양 양광가신(레이네트워크) 총경리

 “중국 최대 이동전화사업자인 차이나텔레콤과 한국의 한빛소프트 그리고 양광가신까지 3자가 힘을 합쳐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온라인게임사업을 벌이기 위해 나섰습니다. 각국의 최고기업들이 뭉쳤기 때문에 온라인게임시장의 성장속도 만큼 미래도 밝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92년 광고사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지난해 디지털콘텐츠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변경한 양광가신(http://www.raynetwork.com.cn)의 수잔 양 총경리는 올해말 5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게임시장의 황금빛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

 “온라인게임과 함께 양광가신이 주목하고 있는 부문은 모바일콘텐츠사업입니다. 한중 3자 합작회사에 차이나텔레콤이 참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동전화가입자의 기하급수적 증가에 대비해 벨소리, 캐릭터, 모바일게임 등을 경쟁업체에 한발 앞서 서비스해야 합니다. 앞으로 양광가신의 2대 핵심사업은 온라인게임과 모바일콘텐츠로 압축될 것입니다.”

 실제 모바일콘텐츠사업을 위해 한국의 C사가 지난달부터 양광가신을 직접 찾아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수잔 양 총경리는 이번 모바일게임쪽 C사와의 협력도 별다른 마찰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에서 게임시장이 유망하다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한국업체는 줄을 섰습니다. 하지만 미래시장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갖고 명확히 중국시장을 이해하고 있는 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업체가 자신들의 기술우위와 시장경험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명확한 비전과 대안을 갖춰 중국업체를 설득하고 성공을 함께 나누는 진중한 자세를 가질 것을 희망합니다.”

 수잔 양 총경리가 한국업체들에 조심스럽게 던진 애정어린 충고였다.

  <베이징=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