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균형의 예지

◆조환익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hecho@kotef.or.kr

  

 얼마 전 우연히 듣게 된 어느 노인들의 대화다.

 “이회창씨 그 양반 두 번씩이나 낙선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겠지만 요즘 같은 때 어찌 보면 속편하게 된 것 아니야.”

 “그래. 나 같은 사람은 대통령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시켜줘도 하루도 못할 것 같아.”

 우리나라는 참 대통령하기 힘든 나라다. 의욕적으로 출범한 역대 대통령 중 졸업성적 좋은 분이 별로 없다. 수많은 고비를 초인적으로 넘기면서 대통령이 되신 분들이니 어느 분이나 사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바쳐 나라만을 위해 일해보자는 각오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좋지 못한 것은 우리 내부적 갈등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국민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게 돼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압축성장을 한나라, 무슨 수를 써도 잘 개선되지 않는 동서간 지역감정 등 계층간·집단간·지역간 갈등잉태 요인이 구조적으로 많다. 정부 초기에는 강력한 통치력에 가려 이런 갈등구조가 잠복해 있지만 몇 년 후 정부가 힘이 빠지거나 도덕성이 무너지면 갈등구조는 발톱을 세운다. 그리고 이는 또 하나의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쓴다.

 특히 불과 30년 사이 최후진국에서 개도국, 선진국을 다 경험해본 나라, 또 OECD에 가입해 바로 그 다음해 거덜이 나서 IMF로 간 나라, 국가 신용등급이 일시에 9등급이나 떨어졌다가 오르려니까 한번에 3∼4등급씩 널을 뛰는 이 어지러운 장단 속에 어찌 갈등이 구석구석 배어 있지 않겠는가.

 특히 재벌문제·노사문제는 사안의 본질을 떠나서 하시라도 흑백논리로 처리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념적 극단이 공존할 수 있는 원초적 갈등의 진앙지처럼 여겨지곤 한다. 항상 신정부는 이 문제만 잘 처리하면 국민통합은 저절로 될 것으로 생각하고 제일 먼저 손대고 싶은 유혹이 들 수 있다. 특히 집권초기 개혁이란 깃발이 펄럭일 때, 이때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자연스럽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점차 기업경영도 투명·건전해지고, 경제정의도 확립되고, 분배구조도 개선돼왔고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인 균형의 예지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 확 달라지는 것, 이런 것들은 일견 참신해보이고 언제나 변화를 기대하는 대중심리에도 맞다. 그렇지만 바늘 눈금이 균형점을 지날 때 새로운 갈등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균형의 예지를 찾는 것 말이 쉽지 참 어려운 것이다. 서투르게 했다가는 대립되는 양측으로부터 다 배척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가 아는 어느 전직 고위층이 “극단적인 여론대립이 있을 때는 정부의 입장은 엉성한 것이 가장 최선이더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경제문제에서 그 균형점을 찾아내는 잣대는 무엇일까.

 국제경쟁력이라고 본다. 기업의 국제경쟁력,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위해서는 방만한 경영도, 과도한 규제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매일 조금씩 나아져도 앞으로 수년 내 중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특히 재벌의 경영방식, 공기업의 민영화, 주5일 근무제 등 앞으로 신정부가 맡아야 할 문제들의 처리과정에서 아무리 단기적으로는 국민지지도가 높은 조치라 해도 중장기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깎아내릴 소지가 있다면 신중해야 한다.

 또 어떤 조치든 임기 중에 또는 심지어 1∼2년 내 꼭 효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균형감각을 심하게 잃을 수 있다. 특히 5년 전 있은 빅딜 같은 기업 대상의 깜짝쇼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 울타리 밖에서 외치던 논리와 중심에서 책임감을 갖고 보는 시각이 다소 달라져도 변절로 봐서는 안된다. 오히려 보다 공정하고 균형있는 자세를 취하려면 지금까지 익숙해 있던 그 논리를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균형의 예지만이 갈등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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