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김남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책임디자이너

21세기 새정부를 맞이하는 계미년 새해가 밝았다. 계미년은 월드컵 신화를 이어갈 IT 신화창조의 해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휴대폰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고 월드컵으로 지구촌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수는 없다. 더 많은 IT 신화를 창조하고 일등기술과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월드컵 신화 뒤에는 붉은 악마가 있듯 IT업계에도 묵묵히 피와 땀을 흘리며 신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IT업계의 붉은 악마들, 그들의 신화를 향한 피땀어린 얘기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밤새 뒤척이다 잠이 깼다. 가위에 눌린 듯 온몸엔 식은땀이 흐른다. 무언가에 끊임없이 쫓기는 꿈이었던 것 같다. 악몽을 잊으려 푸석푸석한 얼굴로 불을 켰다. 환한 불빛아래 덩그러니 홀로 놓인 거울속의 자신이 더 무섭고 외롭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짓누르는 것일까.

 힘차게 커텐을 열었다. 그러나 까만 어둠만이 젖혀진 커텐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아직도 사방은 깜깜하다. 텅빈 도시의 거리엔 가로등만 점점이 박혀 있다.

 서둘러 단장을 하고 차를 몰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듯 길 옆에 늘어선 가로등불을 차례로 삼킨다.

 어느새 한 손엔 싸늘한 휴대폰의 감촉이 전해진다. 오는 전화가 없어도 버릇이 돼버렸다. 희미한 웃음이 메마른 입술을 스친다. 벌써 자신만한 아들을 옆에 끼고 나온 친구들의 핀잔이 귓가를 맴돈다. “정신차려, 너 휴대폰이랑 결혼했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디자인팀 책임디자이너 김남미씨.

 그녀에게 자연인 김남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친구들은 결혼하라고 성화지만 실은 세상 모르게 푹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다. 디자인과 씨름한 지 벌써 13년째지만 갈수록 어렵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걸어온다.

 그동안 백화점이란 백화점은 다 둘러보았다. 책들도 모두 훑어보았다. 이젠 무엇을, 어디를 살펴보나.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더 답답해져온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제 그녀의 분신이 돼버렸다.

 그녀가 휴대폰과 인연을 맺은 지 어언 5년째다. 그동안 소위 삐삐라는 페이저로, 플립업타입 휴대폰으로 한국산업디자인상을 두번이나 탔다. 여성전용 드라마폰은 그녀의 최고 자랑거리다. 드라마폰은 휴대폰을 단순한 도구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격상시켰다. 드라마전용 서비스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새 장을 열었다. 우수산업디자인상·한국밀레니엄상 등 상도 탈 만큼 탔다.

 그러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디자인팀 책임디자이너 김남미‘는 오늘도 좋은 디자인을 찾기 위해 거리를 쏘다니고 가위에 눌리며 외롭고 고통스런 일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디자인은 단순한 그림그리기가 아닙니다. 소비자와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얼굴이자 이미지입니다.”

 그녀는 휴대폰 디자인에 대해 종합예술이자 프로듀싱이라고 강조한다. 심미성과 감수성을 자극해야 하고 기능성·편의성도 고루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신뢰성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색상 하나, 질감 하나를 위해 사막을 헤매듯 돌아다녀야 한다.

 자동차가 멎었다. 갑작스런 정적에 심장이 고동친다. 오늘도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끝이 시려온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사진; 휴대폰을 빼놓고는 그녀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김남미 연구원의 일상은 온통 새로운 디자인 연구와 개발에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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