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로 인해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서도 올 한해 남북간 교류협력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핵사태가 남북 경제협력에 일단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속에서도 긍정적인 전망에 무게를 더 싣고 있다.
정부는 일단 국제적인 공조를 통해 북 핵문제 해결을 모색하되 남북한간에 합의된 교류협력사업은 최대한 이행한다는 ‘병행전략’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더욱이 경제협력을 비롯한 남북 교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대북 현금지원 중단, 남북교류 중단에 반대입장을 밝힌 노무현 당선자는 ‘핵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따라서 1월에는 북핵위기로 인해 일부 조정이 불가피하겠지만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개성공단 사업 등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그간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진행해 왔던 비무장지대 지뢰제거 작업은 이미 지난달 마침표를 찍었다. 핵파문의 와중 속에서도 총 대신 삽을 든 남북 군인들이 대결과 불신을 쳐내고 화해와 신뢰의 새 길을 닦은 결과다.
남북은 특히 개성 850만평의 부지 중 1단계 100만평에 대한 개성공단 조성사업을 2003년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합의한 상태여서 새해에는 북미관계 등 주변상황만 뒷받침된다면 개성에서 남측의 건설 중장비와 북측의 인부들이 어우러져 길을 닦고 공장을 짓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육로를 통해 금강산과 개성 지역을 오가는 장면은 두 해 전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감동을 맛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지난 11월 북한의 금강산 관광지구법 제정으로 정보통신산업단지인 ‘금강산 밸리’와 통천 경공업단지도 들어서게 될 예정이어서 서쪽의 개성공업지구와 함께 남북 경제협력의 동서 양축으로 기능하게 될 전망이다. 이로써 북한은 나진·선봉, 신의주, 개성, 금강산 등 4개의 특구를 가지게 됐으며 7월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시작된 개혁·개방 의지가 한층 선명하게 드러났다. 핵파문에도 불구하고 북측 당국이 일련의 놀라운 변화들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지난해 말 예정된 착공식이 연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개성공업지구 사업, 경의·동해선 임시도로 연결사업은 남북 교류는 물론 경협의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단개발이 본격화되면 남한 경공업 분야 중소기업은 물론 정보통신 벤처기업의 진출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의 외교안보 분과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북한은 지난 7월부터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단행했고 신의주 일대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하면서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 북한의 대남정책이 경제협력 구도에 초점이 맞춰질 공산이 크고 이에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특구 등을 매개로 새로운 남북협력 기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오승렬 경협연구실장은 “중국과의 의견 조율 부족 및 양빈 문제 등으로 신의주특구 건설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금강산 및 개성특구는 북한 경제의 회복이 가능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마지막 시금석이 될 전망”이라며 “특히 개성공단은 남북한 사회간접자본의 연계 및 군사적 긴장완화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 논란에 이은 핵동결해제 선언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감정이 크게 악화된 상태에서 남북교류 ‘속도조절’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갈수록 남북간에 교류협력의 끈이 끊겨서는 안된다.
미국의 국익이 걸려 있는 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도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은 꾸준히 활기차게 이어져야 한다.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남북대화 통로가 유용하다면 교류협력을 ‘조절’할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북한이 과감하게 벌이고 있는 일련의 개혁 시도들이 제대로 정착하는 것이 한반도 안정에도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남북 교류확대의 열쇠가 북미관계 개선 여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북한 핵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된다면 걸림돌이 돼온 ‘외부적’ 요소들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이 다같이 지혜를 모을 때다.
◆신의주·금강산·개성 특구 비교
북한은 지난해 9월 12일 독자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부여하는 ‘신의주특별행정구’를 설정한 데 이어 11월 ‘개성공업지구법’(5장 46조) ‘금강산 관광지구법’(29개조)을 잇따라 발표했다.
세 특구법은 △자유활동 보장 △투자유치 위한 경제적 특혜 △외부인 참여 허용 △50년의 임차기간 등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신의주는 홍콩식 특별행정구, 금강산은 관광특구, 개성은 남쪽을 겨냥한 공업특구라는 특징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경제적 특혜=북한은 세곳의 특구 지정을 통해 외부의 자본유입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특혜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윤창출을 꾀하는 자본의 속성에 맞춰 이윤의 반출이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여기에다 투자 자본에 대한 보호를 상속이나 사유인정을 통해 분명히 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또 신의주는 특혜 관세 및 세금제도, 금강산은 비과세, 개성은 무관세 원칙을 분명히 함으로써 투자자들로 하여금 매력을 갖도록 했다.
◇외부인의 참여 허용=북한은 이들 특구의 운영에 외부인의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앞선 자본주의적 경제운영방식을 배우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신의주 특구의 경우 행정 장관의 자격요건으로 ‘신의주 특별행정구 주민’으로 규정해 외국인의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중국 자본가인 양빈이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현지 관리기구 구성원을 남측 및 해외의 개발업자가 추천할 수 있도록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관리기구 책임자까지 외부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임대기간=북한은 세 특구의 임대기간을 50년으로 명시했다. 신의주의 토지임대 기간은 2052년 12월31일까지로 분명히 했고 개성공업지구법도 임대기간을 토지이용증 발급일로부터 50년으로 못박았다.
금강산은 토지이용증을 발급받도록 규정하고 구체적인 기간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아산은 50년간의 토지이용증을 북한측으로부터 발급받음으로써 사실상 50년 이용권을 보장받았다.
◇상호 차이점=세 특구법은 이같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신의주는 특별행정구, 금강산은 관광특구, 개성은 공업단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체계는 서로 조금씩 다르다.
신의주는 홍콩식 특별행정구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체계에 있어서도 입법·사법·행정을 비롯해 주민들의 의무와 권리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금강산과 개성공단법은 투자유치를 지향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투자자의 권리와 활동범위를 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북한·중국 경제특구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