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콩에서 청문회 스타로,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초등학교 시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별명은 ‘돌콩’. 작지만 야무져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노 당선자는 해방 이듬해인 46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노무현은 키는 작았지만 할말은 당당히 하고 옳지 못한 일 앞에서는 자신의 주장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그다지 불우하지 않았지만 중학교 입학 후 가세가 기울어 2학년을 마치고 공납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1년간 휴학을 하기도 했으며 부산상고 진학 후에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부산상고 입학 후에는 1학년을 그럭저럭 보낸 후 2학년이 되면서 빗나가기 시작해 방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3학년이 되면서 노무현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 취직공부에 열을 올린다. 대학 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학반 대신 취업반을 선택했다.
노무현은 66년 부산상고를 졸업할 무렵 농협 입사시험을 봤으나 떨어졌고 결국 삼해공업이란 어망회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첫 직장을 한달 반 만에 그만두고 고향마을 산기슭에 황토로 벽을 발라 직접 집을 짓고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73년 결혼 후 본격적인 고시공부에 나선 노무현은 75년 마침내 60명 뽑는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짧은 판사시절을 거친 후 변호사 개업을 한 노무현은 회계에 밝은 장점을 살려 대규모 세금 상속사건에서 이기며 조세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려나갔다. 성공한 변호사 노무현은 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재야운동가로 삶의 전환을 맞는다. 노무현은 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시위현장을 주도하며 6월 항쟁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노무현의 정치입문은 88년 13대 총선 때였다. 총선을 앞둔 3월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가 전화를 걸어 정치참여를 권했다. 부산에서 5공 주역인 허삼수씨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노무현은 의정활동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펼쳐나간다. 결국 88년 5공비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청문회에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다.
90년 1월 노무현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했다. 민정당, 통일민주당, 공화당이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을 창당하지만 노무현은 합류를 거부했다. ‘꼬마 민주당’에 남은 노무현은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민당과의 야권통합에 참여, 통합민주당의 대변인이 됐다.
하지만 이후 92년 총선 낙선, 95년 부산시장 낙선, 2000년 총선 낙선 등 그는 정계에 입문한 지는 14년이 됐지만 국회의원으로 있던 기간은 5년 10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감정 청산을 명분으로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패배가 예상되는 부산에서만 출마, 그의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노무현은 정당사상 초유의 열린정치 실험이었던 지난 3월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승리, 청문회 스타를 능가하는 노풍을 일궈내며 마침내 21세기 첫 대통령의 꿈을 이루어냈다.
◆약력
성명=노무현(盧武鉉 Roh Moo-hyun)
생년월일=1946년 8월 6일(음력)
본적=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주소=서울 종로구 명륜동 1가
가족관계=권양숙 여사와 1남 1녀
병역=육군 상병 만기 제대
신체조건=168㎝, 68㎏
혈액형=O형
종교=무
좌우명=자신에겐 엄하고 타인에겐 너그럽게
존경하는 인물=김구, 링컨
취미=등산
저서=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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