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패커드(HP)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디지털 인쇄업체 인디고 인수 계획은 불과 3일 전 발표된 컴팩컴퓨터 인수에 가려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인디고 인수는 HP의 상용 디지털 인쇄시장 진출의 신호탄이었다. HP는 7억1900만달러를 들여 인디고를 인수함으로써 거의 20년 동안 HP 이미징 사업의 주력 분야인 레이저와 잉크젯프린터 판매 이외 분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HP 중역들은 인디고가 차지하는 시장이 지금은 보잘 것 없으나 앞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자신한다. 이들은 인디고의 디지털 인쇄기가 HP의 프린터가 처음 컴퓨팅 세계에 던진 충격에 버금가는 커다란 파장을 출판산업에 몰고올 것이라며 인디고의 비중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HP가 제지업체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매년 인쇄되는 18조4000억쪽의 인쇄물 중 오피스 컴퓨터 인쇄 물량은 4%에 채 못미친다. 기업 안내 책자와 카탈로그, 지역 화보집 등 방대한 규모의 상용 디지털 인쇄시장이 미개척의 영역으로 남아 있으며 인디고의 진가가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HP의 보이메시 조시 프린팅 및 이미징 그룹 담당 부사장은 “나머지 96%의 기회가 남아있다”며 “HP는 이를 잡기 위해 제3의 기술이 필요했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인디고의 연간 매출액이 2억달러 정도로 앞으로 연간 10%씩 성장해도 지난 회계연도 HP 전체 프린팅 및 이미징 분야 매출액 195억달러에 비하면 1% 정도에 불과하다”며 “인디고가 산업이나 HP의 사업 판도를 완전히 바꿀 정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HP가 인디고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이저와 잉크젯프린터 사업의 성장세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HP는 이 분야에서 렉스마크인터내셔널 같은 기성 업체의 도전과 델컴퓨터 같은 신규 진출업체에 밀려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데이터퀘스트의 애널리스트인 린 리터도 “HP는 ‘오피스 인쇄의 왕’이지만 제품 라인이 다양하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성 업체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고는 기술력이 탄탄한 업체여서 델이 쉽게 따라올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인디고의 성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더구나 상용 인쇄시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술로의 전환기에 있어 시장 잠재력이 아주 크고 신규 진입 문호가 활짝 열려있다. HP 이외에 제록스, 벨기에의 사이콘, IBM·이스트먼코닥과 제휴한 독일의 중견 인쇄업체 하이델버그 등이 디지털 프린팅 기술 시장에 이미 진출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상용 프린팅 작업에 이용되는 오프세트 인쇄기는 인쇄 공정 중 컴퓨터화된 부문이 일부분에 국한돼 종이 위에 잉크 자국을 남기는 원판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따라서 첫 단계 인쇄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수천장을 추가로 인쇄해야 단가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비해 디지털 인쇄기는 인쇄 원판 설치시 컴퓨터화된 내용물을 바꿔주기만 하면 되므로 콘텐츠 변경이 쉽다는 게 장점이다. 디지털 인쇄는 이 같은 장점으로 1000장을 각기 다르게 인쇄하거나 같게 인쇄하거나 모두 초고속 인쇄가 가능하며 비용도 차이가 없다.
이스라엘 리호봇의 복사기 제조업체에서 출발한 인디고는 창업자인 베니 란다가 인쇄 원판에서 전기적으로 충전된 부분에만 접착되는 잉크 개발 시험에 들어가면서 디지털 인쇄 부문에 뛰어들었다.
란다는 지난 93년 최초의 디지털 인쇄기를 선보여 18만9000∼40만달러의 가격에 2000대 이상을 판매했다. 기존 판매된 인쇄기로부터는 연간 대당 5만∼7만달러의 유지보수 및 수리 관련 매출도 올렸다.
디지털 인쇄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인쇄업체들의 경기는 전반적인 침체의 영향을 받아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만 디지털 인쇄기로 교체될 시점에 이른 인쇄기가 8000∼1만1000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업체인 CAP벤처스의 찰스 코르는 상용 인쇄시장의 디지털 기술 수용 속도가 아주 느리지만 이제 시장이 호황단계에 들어섰으며 인디고가 전문인 주문형 인쇄시장이 올해 15억달러에서 오는 2006년 45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HP의 조시는 “잉크젯과 레이저 프린터가 보급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디지털 인쇄기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우리의 성장 견인차로 부상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
국제 많이 본 뉴스
-
1
모토로라 중저가폰 또 나온다…올해만 4종 출시
-
2
단독개인사업자 'CEO보험' 가입 못한다…생보사, 줄줄이 판매중지
-
3
LG엔솔, 차세대 원통형 연구 '46셀 개발팀'으로 명명
-
4
역대급 흡입력 가진 블랙홀 발견됐다... “이론한계보다 40배 빨라”
-
5
LG유플러스, 홍범식 CEO 선임
-
6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7
반도체 장비 매출 1위 두고 ASML vs 어플라이드 격돌
-
8
페루 700년 전 어린이 76명 매장… “밭 비옥하게 하려고”
-
9
127큐비트 IBM 양자컴퓨터, 연세대서 국내 첫 가동
-
10
'슈퍼컴퓨터 톱500' 한국 보유수 기준 8위, 성능 10위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