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헬싱키공과대학 내의 IT연구단지인 이노폴리. 이곳에는 헬싱키대학의 사내외 벤처들이 집결해 있다. 통신사업자인 소네라 본사와 3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장비업체인 노키아 본사와는 10분도 안걸린다. 이곳에서 벤처기업, 통신사업자, 장비업체와 함께 통신용 솔루션, 콘텐츠 등이 연구되고 있다.
이동전화의 변신은 무죄. 이동전화서비스가 그간 통장과 도장, 신용카드로 일컬어지는 금융수단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동전화 단말기에 신용카드가 들어가면서 전자화폐, 전자지갑 등 무선네트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금융 수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건을 살 때 지갑을 여는 게 아니라 이동전화를 꺼내는 시대가 다가왔다. 지갑을 두껍게 만든 신용카드, 멤버십카드, 각종 신분증이 하나의 카드로, 그것도 모자라 아예 이동전화 단말기 속으로 파고 들었다.
이동전화는 통화수단에서 금융수단으로,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문화수단으로 새로운 영역을 찾고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SMS 활용 결제가 아직은 주류=유럽 이동전화사업자 중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통신사업자는 핀란드의 소네라와 노르웨이의 텔레누르다. 국민소득 3만5000달러에서 4만달러에 이르는 부자 나라의 통신사업자들이다. 스칸디나비아 3국에서 통신의 국경은 없다. 세계 통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핀란드 노키아의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토대로 이들 나라는 이미 한몸이다.
이들 통신사업자에 이동전화의 변신은 새로운 화두다. 금융과 결합한 통신상품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규정하고 사업을 준비중이다.
소네라의 무선사업부문 담당자 빌레 사리코스키는 “유럽에선 신용카드, 수표, 지폐, 동전 등 각종 통화 수단중에 동전 등의 사용량이 가장 적다”며 “동전 등을 이용하는 소액결제 분야를 이동전화 결제가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네라의 무선결제 서비스는 주로 자동판매기, 주차장, 세차장 등지에서 이뤄진다. 이 중 사업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부문은 자동판매기 결제서비스다. 사업 부문을 떼어내 별도 법인을 만들고 소네라는 결제만 대행한다.
텔레누르도 비슷하다. 자판기 결제 등이 시행중이며 일부 지역에선 일반 쇼핑, 티켓 구입, 택시 요금 결제가 가능하다.
소네라와 텔레누르의 무선 결제는 대부분 SMS를 통해 이뤄진다. 주차장, 세차장 등에 표시된 고유번호를 누르면 이것이 통신사업자에 전달된다. 사업자는 인증번호를 가입자에게 전송하고 가입자를 인증번호를 현장에서 입력하고 비용은 추후에 통신요금에 합산해 청구된다.
또한 일정량의 현금을 전자화폐로 변환, 통신사업자의 서버에 저장해놓고 소액 결제할 때마다 인증번호를 확인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액 결제에 대해선 미온적이다. 소네라의 모바일 결제는 600유로(약 72만원)가 1회 한도다.
그래도 현재 3만원에서 4만원대에 불과한 우리나라 모바일 결제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이 금액이면 웬 만한 가전제품을 살 만한 비용이다.
◇잠재력은 크다=유럽의 모바일 결제 시장은 아직 SMS에 의존한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을 뿐 단일칩에 기반한 결제 시스템을 본격화하지 못했다. 유럽통신사업자들도 칩기반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진화한다는 점에선 공감하나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절감하는 눈치다. 결정적인 문제는 네트워크나 단말기의 진화가 우리보다 늦다는 점이다.
텔레누르 모바일 결제부문 담당자인 릭 브라운은 “네트워크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현재 인터페이스인 단말기가 좋지 않은 게 주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에는 텍스트기반 단말기가 대부분이고 컬러액정, 고속 네트워크 등이 갖춰지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릭 브라운은 “자사 330만 가입자 중에 2만명 정도가 컬러단말기를 보유했으며 최근 컬러 바람이 불어 조만간 새로운 형태의 결제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경우 2.5세대인 GPRS 설치가 진행중이며 장비업체인 노키아도 GPRS 단말기 개발을 마치고 출시한 상태라 결제 시장의 도약도 시간문제라는 설명이다. 소네라와 텔레누르는 시행중인 서비스 결과를 고객관계관리(CRM)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응용 가능한 결제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내년초 GPRS 서비스가 대중화하고 고객 특성에 맞는 서비스로 진화되면 유럽에서 무선 결제는 현금을 대치하는 서비스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신사업자뿐만 아니라 통신장비 및 단말기 업체들도 무선 결제 솔루션 채택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비업체들은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의 테크노콤플렉스에 있는 결제 솔루션 업체들을 찾아 다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금융·통신 갈등 내재=유럽의 통신사업자는 통신망만 제공하고 금융은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자체 결제가 어려운 업체에 대해 결제를 대행해주나 통신사업자가 금융을 직접 챙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럽의 통신사업자들도 단순히 망만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금융상품 유통, 금융상품 창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소네라의 무선결제 담당 임원인 파비 헬란토는 “현재까지는 금융기관측과 갈등이 없으나 무선결제 시장이 커지고 서비스 융합이 이뤄지면 양측간에 영역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네라와 텔레누르가 준비중인 차세대 무선결제 서비스가 결국 단일칩에 기반한 통합형 서비스다. 조만간 금융과 통신의 영역 다툼이 크게 일어날 전망이다. 이들 역시 통신사업자가 직접 금융업에 진출하지는 않지만 유사 금융업 형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네라의 파비 헬란토는 “향후 무선결제서비스가 소비자가 편하게 느끼고 원하는 형태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금융 기관들은 통신사업자의 금융 서비스 진출을 경계한다. 유럽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융사업자들이 통신사업자들을 네트워크 제공자 역할에 머물게 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비록 우리나라처럼 통신사업자와 금융사업자간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2.5세대, 3세대 서비스가 본격화하면 양측간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세계 최고의 이동전화망을 갖춘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심하다. 실제로 지난 8월에 우리나라 금융 관계자들이 유럽 지역을 방문해 각종 자료를 수집해 갔으며 관계자들과 만나 통신사업자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방안을 폭넓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전화사업자들도 각국의 이동통신사업자들과 금융관계자를 만나 향후 전망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있다.
◇아직은 한국이 우세=유럽의 통신업계는 한국의 무선결제 시장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통신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멤버십 서비스, ‘원칩 솔루션 서비스’ 현황에 대해 이미 정보 파악이 어느 정도 이뤄진 모습이다.
텔레누르 임원인 릭 브라운은 “한국과 시장이 달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면서도 “한국에서 어떤 솔루션이 성공하는지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적자생존’의 원리로 살아남은 서비스는 유럽에서도 생존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무선결제 부문에서 한국의 실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한국식 솔루션 도입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또 한국에서의 금융과 통신의 갈등 전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최후의 승리자가 누구일지, 그것이 세계 무선결제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어느 덧 우리나라의 모바일 결제는 세계 중심에 서 있다.
<헬싱키(핀란드)=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유럽의 이동통신 현황
-권순용 SK텔레콤 런던 지사 부장 (sykwon@sktelecom.com)
유럽의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요즘 재정난으로 아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라이선스 및 망구축 비용과 같은 3세대(G) 초기비용 때문이다. 서유럽의 사업자들이 3G 라이선스 획득에 들인 돈은 전체적으로 1520억달러(182조원) 이상일 정도여서 부채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과도한 해외투자 IT 경기침체, 주가하락 등의 악재가 겹쳐서 유럽의 이동통신사업자 경영진의 최우선 과제는 부채를 줄이는 것이 됐다. 도이치텔레콤은 600억달러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우량자산 매각을 서두르고 있고 프랑스텔레콤, 비벤디 유니버설 자산매각, 감원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유럽 사업자들은 재정난 타개를 위해 우선 3G사업을 연기하거나 3G사업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오렌지 스웨덴은 사업개시연도를 2006년으로 연기하고 서비스 지역을 축소해야 한다고 스웨덴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노르웨이의 3세대 사업권을 갖고 있는 스웨덴의 텔레2도 노르웨이 정부에 사업조건 완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텔레포니카와 소네라는 독일에서의 3G사업에서 철수하거나 무기한 연기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는 독일계 T모바일과 O2UK가 3G 인프라를 공동투자하고 이를 공유를 추진중이다. 양사는 그동안 불편한 관계였으나 비용절감을 위해 공유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와함께 1인당 통화매출(ARPU)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기존의 네트워크에서 또는 2.5G 네트워크(GPRS)에서의 수익을 최대한 증가시켜 재정적인 안정을 도모하려는 방법이다. 즉 음성 이외의 데이터 분여를 최대한 확대하자는 것이다.
유럽 사업자들은 프리미엄 SMS, 멀티미디어메시징서비스(MMS), 버추얼머신(VM)에 연관된 기술과 서비스를 어떻게 엮어내느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데이터 서비스는 서유럽만의 이슈는 아니다. 폴란드·체코 등 동구권 지역과 그리스 등 남유럽, 모로코·나이지리아·남아공 등 유럽의 영향권인 아프리카도 비음성부문의 ARPU 높이기가 과제가 되고 있다.
통신관련 애널리스트들이 한국·일본의 데이터 서비스, 특히 무선인터넷 서비스 수준은 유럽에 비해 2년 정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국만큼 사용자들이 거침없고 왕성하게 기술의 진화를 따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특수 상황과 무선인터넷 경험을 토대로 통신사업자, 제조업체, 콘텐츠업체(CP) 등 모두가 힘을 합쳐서 틈을 보이고 있는 유럽시장으로 진출할 때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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