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벤처캐피탈의 침묵

 ◆이영탁 KTB네트워크 회장 ytlee@ktb.co.kr

 

 요즘 벤처캐피털 임직원은 벤처캐피털이 이제서야 IMF사태를 맞고 있다고 얘기한다.

 올해 들어 7월 말 현재 14개사가 사업증을 자진반납하는 등 문을 닫았다. 실질적인 투자활동도 대형업체를 위주로 진행될 뿐 대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벤처캐피털에 대해 예전만큼 호의적인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 듯하다.

 벤처캐피털이 침묵을 지키게 되면 이는 개별산업 하나의 어려움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받아온 벤처산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면서 국가 경제 전반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벤처캐피털은 신산업의 창조자이자 자본주의의 펌프 역할을 한다. 벤처캐피털은 수없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전망있는 사업을 부단히 찾아내는 과정에서 하나의 펌프 역할을 한다. 이질적인 물질들이 상존할 때 그것을 융합해내기 위해서는 특정 촉매가 필요하다. 바로 벤처캐피털이 그런 화학적 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 촉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벤처캐피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한국 경제의 산업구조 다변화 및 경쟁력 향상이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벤처캐피털은 또한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한다. KTB네트워크의 경우 지난 10년간 미국시장에서 5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며 약 9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동안 미국에 수많은 기업이 진출했지만 이처럼 큰 성과를 올린 경우도 드물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국 벤처업계의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국내 벤처캐피털의 미국 진출도 소강상태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 경제, 특히 벤처업계가 상승국면에 진입할 경우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한번 벤처캐피털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벤처캐피털업계에서는 일반기관 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보호예수제도, 코스닥 등록 전 대주주 지분변동 제한, 코스닥 승인 조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보다는 신규등록 제한에 초점을 맞춘 정책 등이 업계의 발전을 제한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아직 실질적인 개선이 없다. 개선책이 탁상공론에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벤처캐피털이 중추산업으로서 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지금 당장 돌파구를 찾는 것보다 장기적 비전에 있다. 벤처캐피털은 타들어가고 있던 한국 경제에 새로운 펌프가 돼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연구소의 전문인력, 신세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력을 시장으로 끊임없이 공급해왔다. 금융방식도 간접금융방식에서 직접금융방식으로 바뀌었으며 기존 패러다임에서 해결하지 못한 신기술·신산업 분야에서 이른바 스타기업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메커니즘을 만들어왔다. 금융시스템의 변화는 앞으로도 벤처캐피털의 위상을 강화해나갈 수밖에 없으며 벤처캐피털 역시 이제는 종합투자전문회사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기준이나 투자행위 등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는 각종 정책이나 규범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각종 규제나 불합리한 정책, 프라이빗 에쿼티 시장 여건의 미비는 역으로 벤처캐피털의 입지를 좁혀만 가고 있다. 벤처캐피털은 미래에 투자하는 사업이다. 지금 현실이 불확실하고 확신을 갖지 못하는데 미래에 투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벤처캐피털은 벤처산업의 발전과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산업과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함으로써 그 위상을 드높여가고 있다.

 벤처캐피털은 반짝산업이 아니라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흐름이다. 지금 대다수 벤처캐피털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언제 올지 모르는 영업환경 호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과거 호황기에 오만과 방심이 있었다면 앞으로 올 호황기에는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꿈은 혼자 꾸면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 벤처캐피털은 다시 모든 사람과 함께 꿈을 현실로 이뤄 우리 경제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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