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멍청한 백인들

 △멍청한 백인들/마이클 무어 지음/김현후 옮김/나무와숲 펴냄

 

 IMF 이후 한국의 화두는 세계화다. 낙후된 전근대적 사회구조가 IMF 같은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으며 낙후된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소위 ‘세계수준(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개혁해야 한다는 명제가 사회 전분야를 휩쓸었다. 세계화라고 하지만 서방에서 우리에게 주문했던 것이나 우리가 추구했던 것을 들여다 보면 ‘미국화’라는 말이 오히려 더 적합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미국화를 모범답안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최근 미국의 잇단 경제침체 및 회계부정, 휘청거리는 정치·외교·안전문제 등을 보며 혼란스럽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무어는 본인이 ‘멍청하다’고 일컫는 백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시민으로서 미국과 백인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히 비판한다. 책의 시작은 부시와 고어가 맞붙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세세하게 기록하며 부시를 공격한다. 부시의 집권을 쿠데타라고 부르며 미국이 다른 나라에 했던 것처럼 군사적으로 미국의 정치를 바로잡아달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미국사회에 대한 독설에 가까운 풍자, 비판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딱딱한 정치서적이 아니라 마치 유머소설을 읽듯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각각의 비판에 대해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분명한 수치들은 이 책을 결코 가벼운 농담으로 돌리기 힘들게 만든다. 미국이 무작정 싫은 사람들은 통쾌하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근저에는 오히려 인간사회의 보편성을 다시 일깨우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글로벌스탠더드라고까지 불리는 미국적 패러다임도 역시 흑인에 대한 인종문제, 여성·외국인에 대한 문제, 인간성을 무시한 사법제도,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정경유착, 처절한 교육문제, 공해·환경파괴로 가득 찬 골치덩어리라는 것을 통렬히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미국 사회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리스트들이 우리가 우리사회의 문제점으로 매일 접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유명 작가이자 영화제작자, TV프로그램 진행자인 마이클 무어가 쓴 이 책의 힘은 한 미국의 양심, 백인의 양심이 객관적으로 자신의 나라, 자신이 속한 특혜집단의 모순을 구체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통해 꼬집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그렇다고 TV오락프로그램에서 매일 부시를 바보로 만드는 미국 같은 사회에서 이 책이 8주간 베스트셀러 1위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미국 사회 밖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싶은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맹목적으로 미국을 글로벌스탠더드의 모범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나, 우리나라 사회구조의 후진성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연세대 김영용 교수 y2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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