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이 한권의 책]마이크로소프트 고현진 사장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因緣)’(샘터 펴냄)

 나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경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세속적인 만족의 총화가 비슷하다고 본다. 그 세속적인 삶 속에서 얼마나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지는 사람간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행복은 내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화, 지식사회화하는 주변 환경과 점점 더 빨라지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우리는 자주 진정한 만족의 문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 ‘인연’을 권하고 싶다. 일상의 초조와 번잡에 시달리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가끔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청량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에서 느낄 수 있는 은은함이 많지만 내가 갖는 첫 번째 느낌은 ‘현재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대해 늘 기쁨을 느끼고 감사한다’는 점이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을 통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연’에 수록된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 언급하고 있듯 잔디밟기, 딸 아이인 서영의 머리카락 만지기, 고무창으로 된 신발을 신고 아스팔트 밟으며 걷기, 아내와 서영에 대한 잔잔한 기쁨 등은 우리의 생활을 되돌아 보고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차분한 시각을 부여한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은 피천득 선생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글이다. 아름다움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그의 감성이 글 속에 따스하게 녹아 흐르고 있다. 작지만 그의 세계는 결코 협소하지 않은 것이다.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조촐한 것들 속에 오히려 보다 넓고 큰 것이 있다.

 피천득 선생은 일상의 스치는 인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와 아름다움의 기억, 기쁨의 계기를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해 특유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수필 소재들은 거의가 일상적인 신변사에 속하는 것들이다.

 또 하나의 느낌은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늘 변화와 새로운 시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피천득 선생의 노력은 우리의 사회생활에서도 꼭 필요한 시도라고 보여지는데 ‘청자연적’에서 연적의 꼬부라진 잎사귀 하나에서도 새로운 여유와 멋을 찾아내는 시각이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피천득 선생은 작품 속에서 봄이나 5월과 같은 새로운 생명,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작을 끊임없이 추구하기 때문에 글을 읽노라면 저절로 몸에 생기가 돈다.

 금아 피천득 선생은 과작으로도 유명하다. 듣기로는 30년 동안 쓴 글이 모두 합해도 100편이 채 안된다는데 한 해에 세 편 꼴이다. 글의 길이도 대개 원고지 10장 미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울리는 메아리는 잔잔하고 또 그윽하다. 오히려 오늘날과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특히 저마다 자기를 알리려는 아우성 속에서 그 잔잔함이 덮여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또 다른 가르침이며 느낌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일상의 작은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 담담하게 자문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그마한 생활의 인연들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가 더 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고현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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