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 미비로 장비업체 속만 태우고...
디지털 케이블 셋톱박스 시장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당초 올해 중반이면 장비 사양이 마무리돼 본격적인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던 관련 시장이 ‘표준화 미비’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히면서 비상이 걸렸다. 특히 장비 표준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미국의 케이블랩사는 아직까지 상용화 시점조차 공개하지 않아 스카이라이프 개국에 따른 위성용 디지털 셋톱박스 이후 또 한 번의 특수를 기대했던 삼성전자·휴맥스 등 주요 장비업체는 애만 태우고 있다.
◇특수 노렸던 셋톱박스업체=휴맥스·삼성전자·현대디지탈테크 등 주요 장비업체는 올 초 사업 계획에서 빠짐없이 케이블 셋톱박스 사업을 거론했다. 단순한 사업 다각화 차원이 아닌 전략 사업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대규모 특수를 기대했다. 이는 먼저 정통부가 디지털 케이블TV 표준으로 오픈케이블 방식을 조기에 확정하고 케이블망의 디지털화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 이에 발맞춰 아날로그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해 주는 디지털미디어센터(DMC) 건립이 구체화되면서 그동안 해외 시장에 주력했던 장비업체는 국내 수요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셋톱박스 사업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삼성이나 LG전자조차 “디지털 케이블TV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사상 최대의 장비 수요가 예상된다”고 털어 놓을 정도였다.
◇더딘 세부 표준화 작업=디지털 케이블 시장은 전망치를 잡지 못할 정도로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는 장비의 세부 규격 작업이 예상과 달리 기약 없이 미뤄지는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 케이블TV 국가 단일표준으로 미국 주도의 오픈케이블 방식이 확정됐지만 정작 세부 규격 작업이 더뎌 상용화 장비 출시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장비 개발을 위해서는 셋톱박스에 탑재되는 미들웨어 규격이 우선적으로 확정돼야 하는데 개발업체인 미국 케이블랩스가 내놓은 1.0 버전은 오류가 잦아 상용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최근 이를 보완해 출시된 버전 2.0도 아직 ITU 표준으로 확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장비업체는 제품의 인증을 받을 수 없고 장비 개발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장비 업체의 동향=오픈케이블 방식이 상용화하기 이전까지 한정적으로 비표준 장비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또 직접적인 장비 개발에 나서기보다는 장비 수요처라 할 수 있는 유선방송사업자(SO)에 대한 투자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다국적 기업과 제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휴맥스는 이미 지난달 한빛아이앤비에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전자도 미국 내 케이블방송 장비업체인 모토로라나 사이언티픽애틀랜타측과 기술 이전 협상을 진행중이다. 올해 디지털 케이블 셋톱박스 시장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한단정보통신측은 “미들웨어 표준인 OCAP(Open Cable Application Platform) 규격 개발이 늦어지면서 업체에서도 시장 수요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며 “관련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점은 당초 기대와 달리 올해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토로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