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진 한국CIO포럼 회장
흔히 시스템통합(SI) 산업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건설업과 유사하다고 한다.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설계에서부터 기초공사·뼈대·내장·외장 등 많은 기술과 인력이 동원돼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네트워크 등 모든 IT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산업이 미치는 영향도 유사하다. 건설업은 도로·건축물 등 국가와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물리적인 기반을 만드는 산업이다. SI산업도 국가 및 기업의 효율성 개선은 물론 전국민의 편리한 생활이 가능토록 한다.
그렇다면 SI산업을 국가의 주력 수출상품으로 육성하려는 지금 SI보다 수십 년 먼저 시작된 건설업의 역사를 통해 배울 교훈을 찾아보는 것도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SI산업은 건설산업보다는 늦은 80년대 말에 시작됐다. 초기에는 기업들의 정보인프라를 위해 시작했지만 정부의 대형 정보화사업이 SI산업이 건설업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고 작년 말에 우리나라의 10대 수출육성품목 안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중동 붐을 일으키며 최고의 성장을 자랑하던 대형 건설업체들은 90년대에 너무나 쉽게 무너졌으며 당시 최고라고 알려진 기업들이 지은 다리와 건물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최근에 발주된 공공분야 SI프로젝트 수주전을 보면 과거의 건설산업을 연상케 한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기술보다는 가격 덤핑으로 일단 사업을 따내려고 한다. 또 책임분담을 내세우며 협력업체들에게 어려움을 강요하고 있다.
입찰이나 계약 등 각종 제도는 이런 가격경쟁을 부추겨 부실한 시스템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건설산업에서도 그랬듯이 이 같은 모습은 국가 기간시스템의 부실과 SI산업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상품으로 도약하기 위한 출발선에 있는 지금 SI산업은 모든 면에서 달라져야 할 때다.
먼저 인맥이나 덤핑 등을 통한 사업 수주 관행을 완전히 바꾸고 최고의 기술과 인력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해외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대부분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 국내의 관행이 통하지 않을 뿐더러 기술력의 뒷받침 없는 사업 수주는 결국 시스템의 부실화로 이어진다. 해외에서 이런 사례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의 신뢰도 하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SI산업 전체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 자칫 해외에서 날개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SI산업이 좀더 부가가치 있는 산업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건설업이나 제조업과 달리 SI는 인력이나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경험을 수출하는 산업이 돼야 한다. 다른 산업에서 그랬듯이 인력과 제품은 후발국가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높지만 기술과 경험은 쉽게 따라올 수 없다. 그래서 컨설팅을 비롯해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에서도 SI산업의 발전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지금의 환경이 계속된다면 수출은 고사하고 SI산업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기업은 이윤을 남겨서 이를 기술연구·인재개발 등에 재투자함으로써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격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체제가 유지된다면 기업들은 높은 기술과 최고의 성공사례를 만들 여력이 없어질 것이다.
SI를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세계 어디에서나 자랑할 수 있는 수출상품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SI기업뿐만 아니라 IT산업 전반의 발전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과 부를 높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hjoh@lgc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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