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남짓 부모님 속을 참 많이도 썩여드렸다. 딸이 졸업하고 회사엘 다니고 있고 그 회사가 영화사라는데, 영화를 제대로 만들고 있는지, 이틀이 멀다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데 뭐 그리 할 일이 많다고 그러는지, 매일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늦는지…, 10시만 넘으면 휴대폰에 ‘우리집’ 발신자번호가 뜨는 것을 보고 이 딸도 마음이 참 찹찹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규칙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부모님 마음을 만족시켜 드리기가 여간 쉽지 않은 직업을 택했으니 말이다.
드디어 그날, 씨네하우스에서 ‘마리이야기’의 일반관객 시사회가 있던 날 오랜만에 두 분은 극장을 찾으셨다. 그날 따라 관객들이 넘쳐서 두 분을 모시고 나란히 앉아 영화를 관람하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무산되고 겨우겨우 두 자리만 빼낼 수 있었다. 영화 시작하기 전부터 몰려든 관객들 덕에 그 복잡거리는 로비에서 혼잡스럽고 정신없다는 기분 좋은 불평을 하시는 두 분을 모시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마리이야기 러닝타임 80분 동안 극장 뒤에 서 있었다. 그 어떤 시사회보다도 부모님께 선 보이던 그 자리의 그 시간이 어찌나 날 초초하게 만들었는지…. 아주 작은 동작에도 웃어주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그 시사회의 관객들의 반응이 어찌나 고마웠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007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극장을 나오시면서 꼭 안아주시던 그 느낌. 마지막 이병헌씨의 내레이션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웃으며 하시는 엄마의 말씀이 초초했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음악도 좋고 화면도 너무 예쁜데 앞부분이 조금 어려웠다는 말씀을 슬쩍 던지고는 마케팅팀장과 내 마음이 약해질까봐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시던 엄마의 모습이 참 고마우면서도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시사회의 전체적인 반응은 좋았다. 그날 우리는 이제까지 이런 애니메이션을 접해보지 못해 낯설어하는 관객들에게 정보를 더 주고 관심을 높이는 차원이 아니라 표를 사서 영화를 보러오게 하는 행위로 연결시키자는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재무장했다.
1월 11일 서울극장을 메인으로 하여 우리는 그 오랜 시간의 산고 끝에 개봉을 맞이했다. 극장 앞은 함께 개봉한 ‘나쁜 남자’와 ‘디아더스’ 그리고 여전히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지의 제왕’ 등 잘나가는 영화들의 홍보전이 부산스러웠지만 ‘마리이야기’는 극장 앞에 2m가 넘는 큰 개 ‘몽’의 프로모션용 인형을 전시하면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첫날은 서울극장과 메가박스 등에서 밤 늦게까지 표가 매진되는 등 기대이상의 반응으로 제작진들을 행복감에 젖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행복감도 잠시…, 개봉주말 메인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극장을 제외하고는 별로 좋지않은 성적표를 받게 되었고, 다른 영화를 걸기 위해 간판을 내리는 극장이 생겼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극장이야 돈을 벌기 위한 상업적 공간이기에 당연한 논리겠지만 뒤에서 애타게 지켜보고 있던 제작진들은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만들었는데,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장사가 좀 안된다고 바로 다른 작품으로 대체한다니 어찌나 야속하던지…. 개봉 후 일주일만에 거의 절반 정도의 극장에서 마리이야기가 막을 내렸고 장기 상영을 하던 씨네큐브에서도 지금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도 노래방에서 마리이야기의 주제곡이 인기라고 한다. 또 부가 상품으로 만든 노트, 엽서, 인형 등도 하나둘씩 눈에 띄곤 한다.
마리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렸지만 이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의 마음 속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동화같은 이야기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또 애니메이션과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2D, 3D 등이 주종을 이루어왔던 한국애니메이션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리이야기를 3년 동안 자식처럼 아끼면서 키워온 우리, 제작스태프들에겐 하나의 추억으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등불로 오래오래 간직될 것이다.
<씨즈엔터테인먼트 이동은 PD jabbit@s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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